『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했던가? 풍요롭다는 이 계절에도 내 마음은 뭔지 모르게 휑하니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식과 말다툼을 하다가 집에 시너를 붓고 불을 지른 아버지, 카드 빚을 감당하기 힘들게 지내다가 남편에게 뜨거운 식용유를 붓고 딸과 동반자살을 한 어머니…. 나라를 이끈다는 지도자들이 머리채를 잡고, 서로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작태는 정말 가관이다. 신문과 매스컴을 통해서 보여 지는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배울까 걱정스럽고,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른들의 모습을 이러한데 그런 모습을 보고자란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고 배우라 하겠는가? 마음이 답답하다.
우리는 새 가족을 맞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미리(가명)는 아동학대예방센터를 통해 우리 빛누리 집에 오게 되었다. 얼굴과 팔다리는 굵은 몽둥이로 맞아 줄무늬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주위를 살피고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는 시간에 공동묘지에서 아이는 인근주민에 의해 신고되어, 보호되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다. 아이는 처음에 눈이 마주치게 되면 이내 얼굴을 돌리고 부자연스럽고 겸연쩍게 웃었다. 새엄마의 심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 인해 얼룩진 팔다리는 너무 맞아 피멍이 들어, 검은 빛을 띠었다. 세상에∼ 정말 지독하게 때렸다. 미리의 새엄마가 내 앞에 있으면, 어찌 어린애에게 이렇게 할 수 있냐고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빛누리 언니들은 단기쉼터에서 지내다 온 어린 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모습과 분위기에서 느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미리에게 뭔가 위로해 주고 싶어했고, 그 모습은 누구보다도 더욱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아이는 전학을 하여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고, 언니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 곳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다. 또 도벽과 거짓말로 오자마자 집에서, 학교에서 한바탕 사고를 저지르며 신고식을 했다. 애정결핍과 심한 심리적 상처를 입은 이 아이의 문제 행동에 아이만 탓 할 수 있겠는가? 동생 마음을 언니들은 충분히 이해하는 듯 하다. 동생을 귀여워하며 자신들이 아끼는 물건을 나누고, 머리도 곱게 빗어 예쁜 핀도 꽂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휑한 마음은 위로 받는다.
맞은 흔적이 가시기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하겠지만 미리의 얼굴색이 올 때보다 훨씬 살빛으로 돌아 왔다. 이젠 눈도 제법 잘 마주치고 소리내어 환하게 웃기도 한다. 나이에 비해 미리가 겪은 삶의 무게는 누구보다 무겁고 힘들었다.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고 천진함으로 우리들과 정겹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준 아픔을 씻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이 계절, 풍요로운 한가위 둥근 달 속에, 방아 찢는 토끼들의 모습에 웃고, 자신의 소원을 비는 그런 천진한 어린아이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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