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희년의 개막을 알리는 첫걸음은 1999년 12월 24일 자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聖門)을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이 육중한 청동대문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으로 장식돼 있다. 은총의 시기인 대희년을 여는 성문에 순교자들의 모습이 새겨진 것은 바로 교회가 순교의 고통과 영광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2천년 역사를 통해 박해의 칼날은 내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로마 대박해
복음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던 로마제국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37년 스테파노가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고 64년 네로 황제에서부터는 첫 번째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된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순교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에서 신앙의 자유를 승인할 때까지 무려 300여년 동안 박해가 이어졌다. 2세기에 순교한 이들 중에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주교, 107년경), 철학자 유스티노(167년경)외 6명,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주교, 156년경) 등이 있고 3세기초 카르타고의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202년), 오리제네스의 부친인 레오니다스(202년)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 때에는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노(주교, 258)가 순교했고 같은 때 로마에서는 교황 식스토 2세가 그의 부제들과 함께 체포돼 순교했다.
로마 박해 동안 순교한 이들의 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많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1만명 미만에서 수백만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언제 박해의 칼날이 내려질지 모르는 가운데 살았던 당시 그리스도인 모두가 순교자라는 주장도 있다.
종교개혁기와 지리적 발견에 따른 선교활동의 확장 시기에는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다.
영국은 16세기말과 17세기초 많은 순교자들을 냈다. 제오르지오 넵퍼, 제오르지오 제르바시오, 크리스토퍼 발레스 등이 16세기를 전후해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했다. 영국왕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영국 교회의 창설을 반대해 참수된 토마스 모어(1535)는 대표적인 순교자이다.
▲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 37년 돌에 맞아 순교했다.
근세의 순교자들
혁명기의 프랑스에서 많은 순교자가 배출됐다. 루이 16세가 반가톨릭 악법을 반포한 것에 반대한 노엘 피노트 신부(1794)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등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순교했다. 세계 선교 시대, 복음이 처음 선포되는 지역에서는 어김없이 박해가 일어났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박해가 연이어 발생했다.
교황은 2000년, 120명의 중국 순교자들을 시성했다. 17~18세기 중국에서 순교한 이들이고 나머지는 1900년 의화단 사건 때 순교한 레오 이냐시오 만진 등이었다. 그 중 33명이 외국인 선교사고 나머지 87명은 모두 중국인들이다.
프란치스코 카필랴스 신부를 비롯해 베드로 산스 주교, 뒤프레스 주교, 루이지 베르실리아 주교 등 주교와 신부들, 그리고 마리 에르민느 수녀 등이 포함돼 있고 9살의 안드레아 왕천싱부터 79세의 바오로 류신태 등 많은 평신도들이 순교했다.
일본은 16세기말에 박해가 일어나 작은 형제회 소속 선교사 6명 등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고 그 중 26명이 1862년에 시성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처음에는 30만명의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한 유화 정책을 폈으나 1614년 금교령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박해를 실시했다. 도쿠가와 3대에 이른 박해로 인해 일본에서는 수만명의 순교자가 생겨났다. 일본의 순교자들 중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도 있었는데 성 레오 가라수마루는 1597년 다른 25명의 교우들과 함께 나가사끼 교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했다.
어느 때보다 많은 현대 순교자
신앙의 자유가 보편화된 이후, 직접적 종교 박해는 끝났지만 20세기 들어서 이른바 「새 순교자」들이 나타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과 공산주의, 나치즘, 독재 정치, 내전의 와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수없이 희생됐다.
교황은 2000년 5월, 콜로세움에서 총 1만2692명의 그리스도인을 「신앙의 증인」으로 선포했다. 교황은 『콜로세움은 초세기 신앙의 선조들이 겪은 고통과 고난을 증언한다』며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초세기 순교자들보다 훨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웅적으로 신앙을 증거했다』고 말했다.
이 명단은 가톨릭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의 희생자를 중심으로 제주교난 당시 희생된 사람들로 가톨릭 209명, 성공회 6명 등이다.
유럽에서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눈에 띈다. 히틀러 암살 혐의로 체포된 디트리히 본 회퍼,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에디트 슈타인,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뿐만 아니라 1939년부터 1943년까지 100여명의 독일인 예수회 신부들이 수용소에서 처형됐다.
미국에서는 지난 1980년 산살바도르에서 살해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와 엘살바도르에서 살해된 수녀 4명, 과테말라에서는 후안 호세 제라르디 주교가 포함됐다. 러시아의 경우, 1917년 볼셰비키에 의해 살해된 러시아의 엘리자베스 대공비를 포함해 혁명 과정에서 20여만명의 정교회, 가톨릭과 개신교 성직자들이 처형됐다.
아시아에서는 이슬람과의 충돌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신성 모독법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이어지는 파키스탄에서는 1998년 이에 항의해 정의평화위원장이던 존 조셉 주교가 법원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해 전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인종 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많다. 96년 부룬디에서 2명의 주교가 살해됐고 알제리에서도 7명의 수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됐으며 이를 비난한 대주교가 피살됐다.
하지만 이러한 박해와 순교의 기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수난 중 극히 일부분에 그친다. 지금도 순교의 영광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지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느님의 부르심인 것이다.
◆ 끝나지 않은 박해의 현장
참된 평화와 화해로 종교간 대화 이뤄야
오늘날의 박해는 종교적 신념에 정치, 겅제, 사회, 문화적인 복합적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더욱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가톨릭계 통신사인 피데스(Fides)는 지난 2001년 한해 동안 전세계에서 살해된 선교사들의 수가 33명인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이 살해된 동기는 단순한 강도에서부터 그리스도교를 향한 적대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피데스 편집국장인 베르나르도 체르벨레라 신부는 우려할 만한 사례를 강조했다. 즉 강도나 강간 등 범죄 행위는 자주 종교적, 또는 정치적인 살해 동기를 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1년 5월 5일 과테말라에서 살해된 미국 출신 바바라 포드 수녀의 경우 단순 범죄의 희생자로만 보기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는 것이다. 포드 수녀는 오랫 동안 토착 인디언들의 권익을 위해 일해 왔고 특히 수년 전 암살된 과테말라의 후안 호세 제라르디 주교와 함께 일해왔기 때문이다. 또 자마이카의 한 본당에서 살해된 캐나다 출신의 예수회 소속 마틴 로야커스 신부는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농장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해와 위정자들과 이권을 가진 권력 집단의 견제를 받아왔다.
체르벨레라 신부는 『신의 이름으로 생명을 해친 빈 라덴을 포함한 권력자들과는 달리 이들 33명의 희생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희생된 지역은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각각 10명이고 아프리카 8명, 오세아니아 2명, 유럽에서 2명 등이다. 이들 지역을 보면 대부분 종교나 인종 분쟁이 극심한 지역이다.
▲ 파키스탄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지난 1998년 5월 8일 카라치에서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