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는 현대사회의 통과의례인가, 아니면 삶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지각변동의 진원지인가.
내년 7월부터 오는 2011년을 정점으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규정한 법이 국회를 통과, 주5일 근무시대를 향한 「로드맵」이 짜여짐에 따라 사회 각 분야는 물론 종교계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향한 새로운 돛을 달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물론 한국교회를 새로운 변모기로 이끌어갈 주5일 근무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다양함만큼이나 대응 방식 또한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다.
신앙과 생활의 괴리 심화
우리 사회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주5일 근무」라는 사회제도는 직접적으로 신앙생활의 여러 면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시킬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염려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늘어나는 여가시간으로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는 여건이 확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미 많은 이들의 가슴을 부풀려놓은 연휴를 이용한 가족이나 동호회 등 공동체 단위의 활동은 주일미사 참례 등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 쉽다.
특히 교회가 늘 새로운 세대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수용하고 변화의 흐름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산실이 되어 온 주일학교는 교회의 대처 여하에 따라 명암이 확연히 대비되는 미래와 대면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을 중심으로 외부활동이 늘어남으로써 교회 안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더욱 심화돼 주일학교를 통한 신앙교육이 벽에 부닥칠 수도 있다.
또한 신자들의 본당 활동 둔화와 복지단체 봉사자 감소 등도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다양한 교회활동의 주축을 이뤄온 여성신자들이 주5일제로 가족의 활동기반이 넓어짐에따라 교회와의 관계가 과거보다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단순히 주일미사에 빠지는 문제만이 아니라 신자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얻는 기쁨보다 사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물질적.정신적 충족감을 더 매력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는 세태에서 그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도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수시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고 발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신앙이 신자의 존재양식이 아니라 취미활동쯤으로 인식되는 서구교회의 사목 실패 상황을 재현하게 될 지도 모른다.
더 깊어지는 가난의 그늘
한국교회는 주5일 근무제가 논의되는 동안 심포지엄과 연수, 의식조사 등 다양한 논의를 통해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사목 대처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런 모색을 바탕으로 요 몇년 새 주말농장 확산 등 도.농 교류 확대, 휴양지를 중심으로 한 관광사목 활성화, 직장인 등을 위한 미사시간 확대 등의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 5일제를 염두에 둔 교회의 사목 방안도 아직 이 제도로 인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소수의 신자들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주5일제로 인해 양지와 함께 늘어날 게 자명한 그늘진 곳을 향한 사목에는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부터 대규모 사업장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할 경우 영세민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는 물론 교회 사목의 영역에서마저 계층간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실제 대기업 노동자들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주5일 근무제는 그저 꿈같은 소리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입법을 통해 주5일제를 강제한다고 해도 사회적 인프라가 이들을 품어 안을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사회적 차별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주말까지 일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은 자녀 교육 등 가정문제를 비롯, 여가와 문화체험에서 오는 문화격차 등 주5일 근무제로 파생되는 문제와도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로 인해 교회도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목 영역을 비롯해 더욱 다양한 사목적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교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위화감을 해소하고 더욱 튼튼한 신앙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목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필요성을 부여받게 된다.
새로운 사목 환경에 대응
이런 사목 여건의 변화에 따라 현행 관할권 중심의 속지주의 원칙 사목구조에서 속인주의적 사목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속지주의 원칙만이 고수될 때 현대의 다양한 현상 안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 특히 늘 새로운 세대로 우리 사회와 교회에 등장하고 있는 청년과 학생 등 젊은 세대가 교회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며 『속지주의적 사목구조 안에서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속인주의로 사목형태를 다변화 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변화요소인 정보화, 광역화가 지리(地理) 파괴현상이라는 점에서 이는 교회 안에서도 속인주의 사목 병행을 가속화시키는 요인들이 될 것이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여러 교구에서 빈민사목, 직장인사목, 경찰사목 등을 통해 꾸준히 속인주의 사목에 관심을 쏟아오고 있지만 확대되는 사목 영역을 따르기엔 힘에 부친 상황이다.
따라서 교회는 급변하는 한국적 상황에 부합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 사목 역량을 양성하는 노력과 함께 신자들에게 끊이지 않는 신앙의 디딤돌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주5일 근무가 더 서러운 이들
“꿈같은 이야기죠 먹고살기 바쁜데”
교회 사목대처 중산층에 치중
소외계층 위한 우선배려 필요
『주5일 근무제요?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한테는 먼나라 이야기에요』
지난 9월 3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 봉천3동선교본당에서 만난 김 베드로(48)씨의 말이다. 김씨는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노동자다. 궂은 날씨 탓에 일을 나가지 못한 김씨는 선교본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중이었다. 김씨의 하루 일당은 7만원. 비가 오거나 추운 날은 일이 없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아들 학비 대기도 벅차다. 오십이 가까워 오지만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마치 주5일제로 모두가 산으로 바다로 놀러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은 더 놀고 못사는 사람들은 더 일하는 거에요. 일 더 해 봤자 살기는 계속 힘들어지고…』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매스컴을 비롯해 온 나라가 핑크빛 환상에 젖어있지만 김씨처럼 영세한 업체 근로자나 일용노동자들, 비닐하우스촌 등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곳에서 살고 있는 독거노인 등 힘없고 가난한 빈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뜩이나 사회문제시 되고 있는 계층간 위화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교회는 주5일제 대처방안을 준비함과 동시에 주5일제의 그늘에서 소외돼 가는 도시빈민층을 위한 사목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실 교회의 주5일제 대처방안은 타깃이 중산층에 맞춰져 있다. 관광지 등지에 성당을 짓고 피정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단편적인 관광사목 중심이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기우 신부는 『각종 기관과 연구소가 제시한 교회의 주5일제 대처방안은 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유층의 생활패턴을 따른 사목방안』이라고 지적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빈민들을 위한 교회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신부는 관광지에 성당을 짓고 미사를 드리는 것이 신앙은 아니라면서 『독거노인이나 실직자 등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계층간 위화감을 줄여 나가는 모습을 교회가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용직 노동자와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760만명. 실직이나 병으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고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곳에서 생활하는 가구수가 330만에 달한다. 주5일 근무제가 그저 꿈같은 이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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