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의 핵심 주제 ‘부재와 현존의 경계’
부재와 현존을 구분 짓는 지표는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재 한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에 대한 구분이 얼마나 애매한 것인지에도 긍정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그」라 하더라도 그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만나지 못한다면, 그는, 내 앞에 있는 그는, 내게 없는 존재일 뿐이다.
욥기는 바로 이러한 「부재」와 「현존」에 대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화두로 삼고 있는 책이다. 현존하고 있지만 그의 내면을 만날 수 없을 때, 그는 나에게 늘 타인이듯, 현존하시지만 내가 그분의 현존을 「발견」하지 못할 때, 하느님은 죽었거나(사신신학), 혹은 부재(무신론)하시는 듯이 보일 수밖에 없다. 20세기 전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많은 지성인들을 열병에 걸린 듯 전염시킨 「실존주의」는 유감스럽게도 신의 죽음을 슬로건으로 삼은 무신론적 사조였다.
전 세계를 피와 죽음으로 물들게 한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도대체 신은 존재하고 있었는가? 그들이 제기했던 비수 품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실존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우리는 이제, 신의 죽음을 「겁없이」 선고하기에 앞서 짚어봐야 했을 것은 없었는지, 「그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과 「실제적 부재」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는지를 성찰한다. 나(인간)의 역량부족으로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하느님)가 부재한다고 단정지었던 만용은 전적으로 인간인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고통과 그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쳐 온 욥기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성서가 제시하는 고통의 문제, 그로 인한 하느님 부재 선언을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해 보고, 욥기의 저자가 언급하고자한 진정한 신학적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욥기의 중요성
1952년, 사해 문서 발굴이 한창일 즈음 욥기의 히브리어 사본도 발견되었다. 이 사본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욥기가 차지하던 위상을 뚜렷이 제시해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는데, 바로 사본의 「서체」 때문이었다. 발견된 사본은 놀랍게도 모세오경에만 제한되던 특별한 서체로 기술되어있었던 것이다. 「토라」라고 불리며 이스라엘 경전의 중심 축으로 군림해오던 모세오경은 그 독보적인 위치를 다른 성서 작품들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독특한 서체로 필사되곤 하였었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서체가 욥기의 필사에도 적용되었음이 드러남으로써, 욥기가 모세오경과 견줄 만한 비중 있는 책으로 여겨졌음이 단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고대 근동 문학과의 관계
「의인의 고난」이라는 주제는 비단 욥기만의 독특한 주제는 아니었다. 당시 고대 근동의 문학작품들 안에서 이 주제는 자주 발견되는 것이었는데, 수메르(기원전 3300년경) 지역에서 출토된 「사람과 그의 신」, 『「수메르 욥기」 등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아카디아어(기원전 2300년경)로 저술된 「바빌론 신정론」, 「바빌론 전도서」,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대화」 등 역시 동일한 소재로 되어 있다.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고난 당하는 주인공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성서 욥기는 고통으로부터의 수동적인 해방만을 갈망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하느님을 만나고, 자기 고통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자세를 부각시킨다. 즉,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에만 연연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정면에서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길…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의 실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쩌면 그러한 동경은 이미,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절실함과 간절함은 아닐는지…다시 돌아온 가을, 보이지도 않고, 쉽게 느껴지지도 않는 하느님이지만, 그분과의 만남을 위해 분투하는 욥의 여정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신앙으로 아름다워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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