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매년 증가하는 이혼율로 인한 가정 붕괴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결혼 건수는 약 30만6000건인데 비해 이혼 건수는 14만 5000건이고, 인구 1000명당 이혼율은 2. 8쌍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혼이 증가하는 원인을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렵겠지만 학자들에 견해에 따르면 시대 변화에 따른 성역할의 변화와 남녀간의 성격과 생리적 차이에서 오는 이해 부족, 그리고 현대의 지나친 개인주의가 그 원인이라 합니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이 중 성격과 생리적 차이에서 오는 이해 부족이 이혼의 단서를 가장 많이 제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의 경험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98년부터 약 4년간 수녀원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신부와 수녀와의 만남을 일반인들은 거의 환상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만 그러나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어려움을 많은 경우 나를 상대하는 수녀의 잘못으로 여기고 질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남녀 심리에 대한 책을 읽게 되면서 이러한 트러블은 한 개인의 잘못에서 유래하기 보다는 많은 경우 남녀가 다른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행동, 어쩌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수녀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그리고 수녀가 나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은 것도 결국은 남녀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경험은 그 후 가정을 위해서도 남 녀 차이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기회가 되면 남녀의 차이에 대한 글과 강론을 자주하게 됩니다. 우리 가톨릭 신문 독자들도 남녀의 차이에 대한 공부를 통해 가정 행복의 기초를 놓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남녀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결혼생활을 위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희생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결혼의 본질을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고 정의합니다. 즉, 1+1=1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공식은 자연 상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1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 상태를 넘어서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1+1 부분이 바뀔 때 즉, 0.5+0.5가 되던지 아니면 누군가 1이 되고자 할 때 0이 되는 희생을 받아들일 때 1은 가능합니다.
이것은 부부일치를 위한 정말 중요한 공식인데,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이혼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1+1=2가 아니라 1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혼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혼과 재혼을 엄격히 금하는 쪽과 이혼은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서로 맞서고 있었습니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이혼을 허용하는 학파 내에서도 여자가 음란할 경우만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엄격한 규정을 두는 쪽과 우리나라의 칠거지악과 같은 사소한 이유로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그 내용은 굉장히 다양했으나 어떻든 큰 흐름은 두 가지였습니다.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바라시아파 사람들의 오늘 질문은 모세 율법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이러한 이혼관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10, 6~7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성서 말씀으로 결혼에 대한 하느님의 의도와 결혼의 본질을 보여주시면서 이혼은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은 먼저 모세의 이혼법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혼관을 반박하는 말씀입니다만 그러나 이 말씀은 이혼금지의 규정을 넘어서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령을 전해주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창조질서의 회복을 통한 결혼의 본 의미를 보여주고자 함이요, 굳을 대로 굳어 있어 하느님의 창조질서마저 왜곡하는 인간의 비뚤어진 마음에 대한 경고가 바로 이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가져야 될 태도는 창조질서의 회복을 통한 결혼의 본질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염원과 「둘이 한 몸이 되는 부부 일치」의 비결을 찾아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그분의 절규를 가슴 깊이 새기는 것이 우리의 1차적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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