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하는데,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 괴로운 흔적들이 있다. 고통은 어쩌면 잊어야할 것을 잊지 못하는데서, 그리고 잊지 말아야할 것을 이내 잊고 마는데서 생기는 불편한 부조리는 아닐는지. 남부 지방 전역을 강타한 폭풍 매미로 뜬눈으로 지새운 그 밤과는 달리 다음날 올려다 본 하늘은 거짓말처럼 높고 청명했다. 이럴 수가, 하는 마음에 무서웠던 어제와 잔잔한 오늘이 도대체 연결된 밤과 아침인지 조차 혼란스러웠었다.
하루밤사이에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께는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고통 안에는 어떤 방식으로건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아침 미사 가는 길에 발견한, 완전히 박살난 정원의 화분들과 뿌리째 뽑혀져 있던 나무들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했지만, 옆에 있던 분의 말씀이 모든 근심과 흔들리는 마음을 단번에 날려주었다. 잘되었네요. 어차피 화분도 분갈이하고 정원도 다시 손질할 생각이었는데…. 흔들림과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은 의외의 태연함과 단순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인간 고통의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한 욥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주에는 저자와 그 시대적 배경 문제를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저자
지난주에 필자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주제가 비단 성서 욥기에만 등장하는 특별한 주제가 아님을 언급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이미 전해져 내려오던 근동 지역의 여러 책들이 동일한 주제를 기술하고 있었고, 욥기 저자는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이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욥기의 내용과 문체를 분석해볼 때,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특징은, 저자가 당시의 국제 문학에 정통했다는 것, 그리고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서 유행했던 대화법 문체에 정통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한 때 성서학계는 욥기의 저자를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외국의 인물로 추정하였다. 1) 외국 사고방식과 외국 지혜문학의 흔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점, 2) 이스라엘의 고유 신학 사상,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이라거나 시나이 계약 등이 부재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결국 학계는, 욥기가 이스라엘 외부의 인물에 의해 외국어로(아랍어) 쓰여졌거나, 아랍어로 쓰여졌던 것을 후에 다시 히브리어로 옮긴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성서학계는 욥기의 저자가 이스라엘 출신이었음을 확신하는데, 특별히 시문 부분에서 발견되는 기존의 성서 전승들(예레미야의 고백록, 시편, 잠언 등)에 대한 인용과 적용이 매우 적절하고 수려하다는 것을 통해 저자가 이러한 유다 성서 전통에 정통했음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
욥기 저자에 대한 물음은 이 책이 언제, 어디서 서술되었는지에 대한 논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러 가설들이 제시되었지만, 한가지 명백한 것은 이 책의 드라마는 극심한 고난의 한복판, 고통의 소용돌이 안에서 생성되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자들이 제안한 욥기의 저술 시기는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유배 중 2) 유배 이후, 성전 재건 시기 3) 500~350년 경.
그러나 욥기에 등장하는 여러 다양한 괴물들의 이름, 그리고 명백히 등장하는 사탄의 존재 같은 소재들은 상당히 후대적인 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에, 욥기가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 최종 형태를 갖추었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고통,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자리
고통과 죽음은 다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모퉁이이다. 그 모퉁이를 돌아서면 생명과 빛을 만나게 되지만, 그 모퉁이를 돌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고통은 하느님의 부재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저 막연한 관계로만 있던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좀더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것으로 하기 위한 은총의 장임을 욥기는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시련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우리 자신의 진실을 다시 한번 닦아내는 자립과 의지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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