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미혜(가명)는 저녁 식사 때가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다가 밥 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해서 이 일로 또 얘기한다는 것이 속상하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타이르고, 야단치고, 급기야는 매를 들어도 어느 사이 잊어버리는 미혜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었다. 그날도 미혜가 들어오는 시간에 대해 그냥 지나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속상한 마음을 짜증 반, 걱정 반 푸념으로 늘어놓으며 미혜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기만 와봐라 오늘은 아주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리라」. 시간이 점점 흘러 하늘 색깔이 진해졌다. 들어오기만 해봐라 벼르던 마음은 사라지고, 아무 일 없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변해갔다. 이제나저제나 들어오려나….
드디어 벨소리가 났다. 『미혜 왔어요!』라는 말이 너무 반가웠다. 반갑고, 밉고, 고맙고…. 이런 속마음을 숨기고, 「이렇게 늦게 와도 되는 거야?」 호령을 하면서 현관에 나갔다. 「아뿔싸!!!」 이건 미혜의 얼굴이 아니었다. 양쪽 볼이 퉁퉁 부어 올라있고, 티셔츠와 신발까지 핏자국이 흥건했다. 그 순간 여러 가지의 상황을 지레짐작하면서 가슴이 내려앉았다. 서로의 질문과 대답이 엉켜서 한참을 현관에서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오는 길에, 모르는 또래 아이가 자기를 쳐다 보는 것이 기분 나쁘다면서, 두 어 시간 동안 인적 드문 장소에 데리고 가 때렸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다음 날, 오만원을 들고 지정한 장소에 나오라며 약속을 했단다. 정말 혼비백산할 상황이었다. 미혜를 씻기고 진정시킨 후 병원에 가서 여러 군데를 체크했다. 다행히 귀와 눈 등의 내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인근 파출소의 두 명의 경찰관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다음 날, 그 아이를 잡았다. 처음 그 아이를 본 순간 정말 미혜가 맞은 것처럼 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가 미혜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우리는 한참 동안 얘기를 했다. 아이도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파출소에 와 있다는 것에 두려워했다. 이혼한 부모님, 자기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직장에 가시고, 저녁 늦게 간신히 만나는 맞벌이 아빠와 새엄마, 휑한 집, 무서운 아빠, 필요한 용돈…. 그 아이의 상황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아이의 그 행동에 대해 이해도 갔다. 파출소에 있다는 자신의 아이를 보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온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고, 입술이 말라있었다. 미안하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지나칠 것인가? 「아이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이 제일 큰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다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자식 둔 죄(?)로 그 아빠는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거듭했다. 해체된 가정, 그리고 다시 회복하려는 가족의 아픔, 어려운 가정경제, 그 안에 사춘기의 아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폭력. 그 아이의 마음은 보이지 않게 더욱 크게 멍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들의 문제로 마음에 점점 멍 들어가는 아이들, 미혜를 때린 그 아이의 멍이면서 우리 빛누리 아이들의 멍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뭘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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