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전기 작가인 조지 비겔(George Weigel)은 『교황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복음의 증거자이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닌 해방의 힘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된 인물』이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황은 오늘날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고 말했다.
시대 초월한 진리 가르침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안에서는 신앙의 교사요 최고 목자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류에게는 영적인 스승으로서, 복음의 가르침을 선포해왔다.
교황은 지금까지 14편의 회칙을 포함한 많은 문헌들을 통해 그 시대에 요청되는,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진리를 가르쳐왔다. 교황은 우선 경제와 사회정의에 대한 문제들을 다룬 회칙들을 반포했고 대륙별로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들을 통해 국제 사회의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해 강조했다.
지난 10년 동안 교황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윤리적 상대주의에 대해 지적하고 그것이 세상과 교회에 큰 도전이 될 것임을 지적하는 또 다른 세 개의 회칙들을 반포했다.
이러한 지침들 아래 교황청의 각 부서에서는 외채 문제, 인공 수정, 무기 산업, 대중매체의 역할과 인터넷의 영향 등 시대와 지역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들을 발표했다.
모든 가르침들의 바탕에는 하나의 핵심적인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됐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인간의 자유는 파괴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교황은 교회의 가르침을 현대 세계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게 하는 동시에 교회가 과거에 행한 과오들에 대해서도 용감하게 용서를 청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종교 전쟁, 그리고 선교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교회 구성원들의 과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했다. 뿐만 아니라 종교 재판, 십자군 전쟁, 그리고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와중에서 그리스도교의 잘못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다.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도 적극 나섰다. 그 대화들은 한때 불가능하거나 때로는 이교적으로 여겨졌던 수준으로까지 확장됐다. 1986년 교황은 로마의 유대인 회당을 방문했고 대희년인 2000년에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바쳤다. 시리아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으로 기록됐고 모로코에서는 환호하는 이슬람 젊은이들에게 연설을 했다. 아시시에서 두 차례 열린 종교 지도자 기도 모임에서 전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은 교황과 함께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전쟁과 테러 행위를 비난했다.
▲ 2000년 5월 13일 교회의 과오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신앙과 윤리에는 엄격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쇄신과 개방의 자세를 견지해온 교황은 신앙과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확고한, 때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교의적인 측면에서 양보 없는 태도를 보였고, 그래서 「확실성의 교황」(papa della certezza)으로 평가된다.
교황은 교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신학자들이나 극도의 「전통주의자」에 대해서는 결연히 단죄했다. 1979년 큉(Hans Kung)을 시작으로 신앙교리성은 많은 신학자들에게서 교수 자격을 박탈했다. 또 공의회의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는 전통주의자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를 파문했다.
교황은 피임, 낙태, 동성애와 같은 문제에 대해 변함없는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1993년 회칙 「진리의 광채」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 1992년, 신자들에게 분명하고도 확실한 교의를 설명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반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평신도의 소명에 대해 지지하면서도 교황은 다른 한편 평신도와 서품된 사제직 사이의 소명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교회의 영성 생활에 있어서 전통적인 교회의 규율, 성체성사, 마리아 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전세계 11억 가톨릭 신자들의 거룩함의 모범으로 많은 성인들을 탄생시켰다. 지난 9월까지 474명을 성인으로 선포했고 오는 19일 마더 데레사의 시복으로 1319명의 복자를 탄생시킨다.
「행동하는 교황」으로서 역동적인 활력을 보여준 교황은 다른 한편으로 엄청난 수의 교황 문헌들을 반포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담을 넘어서까지 정신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고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83세의 고령으로 육체적으로 약해진 교황은 그러나 오히려 그 쇠약해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교황의 오랜 친구로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지낸 요제프 톰코 추기경은 『유한한 인간에 의해 거행됨으로써 희생 제사는 더욱 명백해진다』며 『교황의 깊은 영성과 인간적 한계를 통해 교황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끈다』고 말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8년 10월 15일 13번째 회칙 「신앙과 이성」(Faith and Reason)에 서명하고 있다.
■ 반포한 문헌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재위 25년 동안 반포한 문헌들은 회칙 14편을 포함해 주요 문헌들만 50여편에 달한다. 교황의 각종 사목 문서에 일관된 정신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인간을 가톨릭사상의 핵심에 두는 「신학적 인간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간학에서 출발해 그리스도론을 거쳐, 교회론에서 종합되는 흐름속에서 교황은 개개인의 인격안에서는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고 문화와 시민 생활안에서는 인간 존엄성을 찾고 있다.
먼저 사회교리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문헌은 1979년 첫 회칙인 「인간의 구원자」에서 시작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1980)에 이어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교황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가 정의로운 사회의 핵심임을 선언하고 「백주년」(1991)은 새롭게 대두되는 국가와 사회 문제들을 다뤘다.
「생명의 문화」 건설은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절실하다. 이는 「가정」의 가치와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교황은 교황권고 「가정 공동체」(1981)에서 70년대 인공유산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을 다시 확인했고 회칙 「생명의 복음」(1995)에서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재천명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이 쇄신과 적응이었듯이 공의회 정신과 그 실현에 매진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항상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재천명하기 위해 내적 쇄신과 복음 선교를 강조해왔다.
「인간의 구원자」(1979)와 「진리의 광채」(1993)에서 교황은 즉위 초기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것 과제, 즉 신앙과 이성의 문제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나아가 회칙 「신앙과 이성」(1998)은 신앙과 이성의 극단적인 분리를 야기한 현대 문화 상황을 비판하고 인간은 이성을 통해 궁극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대희년을 거쳐 제삼천년기의 문을 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교황직을 시작할 때부터 새로운 세기를 향한 소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1994년 제삼천년기를 준비하기 시작한 교황교서 「제삼천년기」를 비롯해 대희년을 지나면서 계속 이어진 후속 문헌들, 그리고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와 대륙별 특별총회들을 마치면서 발표된 문헌들은 새로운 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을 담은 중요한 문헌들이다.
「가정공동체」, 「화해와 참회」, 「평신도 그리스도인」, 「현대의 사제 양성」, 「봉헌생활」 등이 모두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문헌으로 반포된 것들이다.
■ 교황 재위 25년 주요 사건들
△1979년 : 멕시코로 첫 사목방문,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 반포
△1981년 :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인 알리 아그자에 의해 피격, 11주 동안 입원
△1982년 :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시성
△1983년 : 새 교회법 반포
△1984년 : 한국 방문 103위 성인 시성, 세계교회협의회(WCC) 방문
△1986년 : 아시시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 지도자 모임
△1988년 : 두 번째 사회회칙 「사회적 관심」 반포, 르페브르 주교 파문
△1989년 : 한국 방문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 주재
△1990년 : 고르바초프를 통해 소비에트 연방과 외교관계 수립
△1991년 : 회칙 「백주년」 반포
△1992년 :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1993년 : 회칙 「진리의 광채」 반포, 두 번째 아시시 종교 지도자 모임
△1994년 : 교황교서 「제삼천년기」 반포,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수립
△1998년 : 쿠바 방문
△1999년 :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 개방, 2000년 대희년 선포
△2000년 : 예루살렘 등 성지 방문, 파티마 제3의 비밀 공개, 중국 성인 120명 시성
△2002년 :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반포, 「묵주기도의 해」 선포
△2003년 : 14번째 회칙 「교회와 성체성사」 반포, 크로아티아 방문으로 100번째 해외순방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