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죠』
차갑병(사도 요한.79.서울 신내동본당) 할아버지가 사람들로 붐비는 우체국에 들어서자 그의 얼굴을 알아본 직원이 반갑게 맞는다.
우체국에서 차할아버지는 유명인사다.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전근을 오기 전부터 우체국에 드나들고 있는 오랜 고객이기 때문이다.
우체국 직원들에게 차할아버지는 고집스런 노인으로 통한다. 벌써 몇 년 동안을 매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우체국을 찾아 어디론가 수십통씩의 우편물을 부쳐왔기 때문이다.
『연세 드신 분이 때를 거르지 않고 하시는 일이니 중요한 일로만 알고 있죠』
차할아버지가 부치는 우편물 뭉치에는 그가 손수 구해서 갈무리해온 신앙 정보들이 담겨있다. 그 중에는 매주 본당에서 나오는 주보를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스크랩해둔 교리와 교회사 관련 자료 등 어디서 이런 걸 다 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차할아버지의 이런 우체국 나들이는 이제 햇수로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고집스럽기까지 한 차할아버지의 한결같은 삶이 지금껏 1040여명의 「쉬는 신자」를 다시 교회로 이끌고 200명에 이르는 조당자를 새로 태어나게 만드는 열매를 맺었음은 우연의 일이 아니다.
차할아버지가 이렇게 열성적인 「전교자」가 된 뿌리는 29년 전인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찾은 병원에서 위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은 할아버지는 길어야 한달 남았으니 남은 생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투병을 하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 7개월 동안 용산성당의 성직자 묘역을 찾아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면 당신 아드님 말씀의 일부분이라도 전하겠습니다』
기도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80년부터 전교활동에 나섰다. 매일같이 비신자와 쉬는 신자 집을 방문해 직접 마련한 상본과 말씀을 전했다.
『그 때 당한 문전박대를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지요』
하느님께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벌인 일이었지만 막상 나서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정방문 때 교리상식을 물어오는 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일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 말씀을 쉽게, 잘 전할 수 있을까. 한동안은 이 생각뿐이었다. 「알아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3년 동안은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교회 간행물과 교회사 서적 등을 뒤지며 공부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이 미친 것이 「쉬는 신자」들의 마음부터 열어놓는 일이었다. 90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쉬는 신자」를 찾아 매주 본당 주보를 비롯해 가톨릭신문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모두 사비를 털어서 나선 일이었다.
「쉬는 신자」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 가톨릭신문사 등지를 돌며 자료수집에도 적잖은 공을 들였다. 그렇게 우편물을 보내면서 한달에 한두번 전화를 걸어 친분을 쌓아나갔다. 차갑게 거절하는 이들에게는 우편물만이라도 받아보길 권했다. 그가 보낸 우편물을 받아본 이들 가운데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해오는 이들도 생겨나면서 다시 교회를 찾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전교 방식이 먹혀들자 차할아버지는 생업까지 제쳐두고 이 일에 매달렸다.
『처음부터 성당에 나오라고 다그치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교회와 멀어져 있는 이들의 마음부터 여는 일이 중요합니다』
90년대 초 용산본당에서 활동하면서 이미 500여명을 회두시킨 차할아버지는 장안동본당과 신내동본당을 거치면서도 식을 줄 모르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런 그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할아버지는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을 돌며 자신이 쌓아온 전교에 대한 노하우를 전하기도 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차할아버지는 전교봉사자라는 소박한 직함으로 「거주 미상자」와 쉬는 교우들을 교회로 다시 인도하는 일 외에도 새 영세자와 통신교리를 받고 있는 이들을 돌보는 일, 조당에 걸린 이들이 교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이끄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다시 교회를 찾게 된 이들에게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한 꾸러미씩의 선물을 안긴다. 그 가운데는 묵주와 성모상은 물론 곳곳에서 수집한 30종류의 기도문, 10여종의 신앙생활 안내서, 전교 테이프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다. 마치 잃어버렸던 가족을 다시 찾은 듯한 반가운 마음이 담긴 듯.
주일이면 성당에서 거의 빠짐없이 있는 관면혼배도 그의 인도로 결실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차할아버지가 가장 기뻐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자신이 인도한 이들이 구역장, 사목위원 등 교회의 일꾼으로 거듭난 모습을 보일 때다.
『이 일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입니다. 죽는 날까지 이 일을 할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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