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세대가 바뀐다 / 맨 몸으로 세상에 와서 맨 몸으로 흙에 돌아가리니 / 자신이 잉태되었던 원형으로 환원되리라 … 먼지에서 태어나서 먼지로 돌아갈지니라 / 형체는 시초의 무형으로 바뀔 것이요 / 생명체는 무기력한 무생물로 / 아름다움은 황폐한 흔적으로 바뀌게 되리라 … 그러나 내 전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 / 내 안에 있는 소멸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 여전히 남아 지속되리라」(「요한 묵시록의 실현」 중에서).
2003년 10월 16일로 가톨릭의 수장이 된지 25주년 은경축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삶의 황혼을 바라보며 자연과 예술, 신앙을 관조한 명상시집 「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로마에서 온 세 폭의 성화」(따뜻한손/132쪽/8000원)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그가 사제품을 받기 직전인 지난 1946년 「안제이 야비엔」이란 필명으로 「가리워진 신의 발라드」를 펴내고 문학의 꿈을 접은 지 56년 만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까지 회칙과 메시지, 담화문, 잠언, 명상록 등 다양한 교회 문헌을 집필해왔다. 그러나 바티칸 수장 자리에 오른 뒤 새롭게 작품집을 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번 시집은 83세의 노경에 이른 교황이 모국어로 쓴 육필 문학작품이라는 점만으로도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과 주목을 끌었다. 특히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최고 목자이자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서 개인의 삶을 온전히 봉헌했던 그가 삶의 마지막 문턱에 이르러 닻을 내린 곳이 바로 젊은 시절 동경해 마지않던 문학의 세계라는 점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로마에서 온 세 폭의 성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시집은 「시냇물」, 「시스티나 소성당 문턱에서 창세기에 관한 명상」, 「모리야 땅의 언덕」 등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자연과 예술, 신앙을 주제로 한 세 편의 운문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시집 전체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자연도 예술도 아닌 「인간」의 본령이다. 결국 시집에는 너와 나, 우리 자신의 탄생과 생존 그리고 종말로 돌아가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셈. 싯 구절 곳곳에 현란한 수사나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지만, 우리의 귓가에 오래오래 여운을 남기는 은은한 잔향이 가득하다.
시집은 지난 3월 폴란드와 이탈리아에서 출간돼 한달 만에 초판 30만부가 매진됐으며, 현재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루투갈어 등으로 번역 중이다. 한국어판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최성은 박사가 번역하고, 원로시인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76)씨가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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