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매상 협회가 판매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판매원의 48% 정도는 한번 시도하다 판매를 포기하고 25% 정도의 판매원은 두 번, 그리고 15% 정도는 3번까지 판매를 시도하다 안 되면 포기 하는데 비해 12%의 사람들은 그 이상으로 판매를 시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3번 이하로 시도하는 88%의 사람들이 판매하는 물건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데 비해 3번 이상 시도한 12%의 사람들이 판매하는 물량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차이를 두 가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는 직업에 대한 열정이 그 이유라 생각했습니다.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랄까, 아니면 애정이라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그 같은 차이를 가져왔다고 말입니다.
사실 거절당했을 때 다시 시도한다는 것은 누7구에게나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절의 아픔을 넘어서는 무엇, 자신의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12%의 사람들은 투철했기에 거절을 또 하나의 희망의 장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물품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경험하는 사실입니다만 내가 체험하고 확신한다면 반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물품에 대하여 체험과 확신,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애정이 있을 때 반대는 포기의 이유가 아니라 설득의 당위가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사실은 오늘 전교주일을 지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신약성서에 보면 병으로 고생하던 약 40명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중 6명만이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께 나아 왔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34명은 친구나 다른 이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치유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우연의 결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필자는 신과의 만남에서 인간이 흔히 가지는 간접성이란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명을 가르치라는 선교의 사명을 가장 중요한 유언의 말씀으로 남기시는데 이 사실도 선포자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떻든 이러한 복음 선포의 사명은 인간의 조건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고려할 때 그리스도인 본연의 사명임이 분명한데 애석한 점은 저나 우리 모두 이 점에 있어서 매우 뒤쳐진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원인의 하나는 우리가 88% 판매원이 가지는 매너리즘 때문입니다. 일부 개신교와 사이비 종교들이 가지는 교회에 대한 열정. 물론 부정적인 면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나 희생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그릇된 목사들이나 사이비 지도자들의 잘못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종교적 열정은 나름대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대한 체험과 확신도 그 이유의 하나입니다. 복음화나 전교란 말은 사람의 대상으로만 하는 행위는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환경. 즉, 하느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과 가치관, 사상, 생활양식을 바로 잡는 것이 복음화요 선교의 또 다른 요체입니다.
우리 사회 얼마나 혼란스럽습니까! 정치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근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착하고 정직한 사람, 근면하고 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잘되는 사회가 아닙니다. 법을 역이용 할 줄 아는 사람들, 큰소리 치고 문이 벽이라 외칠 수 있는 사람들, 뱀과 같은 세속적 지혜나 적당한 사악함을 가진 사람들이 앞에 설 수 있는 사회입니다.
사회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구와 본당, 수도원이란 벽. 교회의 행정체계와 교도권 앞에서 복음의 정신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침묵합니다. 저를 비롯한 신앙인들이 복음에 대한 체험과 확신 거기에서 우러나는 열정과 애정이 부족하기에 침묵은 당연합니다.
물론 현실이 이렇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3%의 소금이 전체 바다의 부패를 방지하듯 여전히 이 세상에는 3%의 소금과 같은 소수의 의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자신의 교회와 복음에 대해 얼마만한 체험과 확신,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자문해 봄으로써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고 아마 그러한 반성이 전교주일을 지내면서 교회와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1차적 과제라는 사실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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