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잘 알고 지내던 자매와 통화를 하는 중에 남편이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끔씩 산삼을 캐어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가끔씩 산에 가는데 만일 내 앞에 산삼이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을 알아보고 캘 수 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 물음에 아니다라는 생각이 미치자 행운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준비하고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리고의 소경 바르티메오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은 우선 형식면에서 자유롭고 또 다른 기적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말씀이나 행동으로 병자를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시며 믿음의 위력을 강조하심으로써 기적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약간은 어색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떻든 그러한 부분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소경이요 거지인 바르티메오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는 표현도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굉장히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 신학적 표현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냥 우연히 나올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 구약성서에 대한 이해를 통한 신학적 반성 위에서만 나올 수 있는 대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단어들은 전문적인 신학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단어가 거지요 소경인 바르티메오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온다는 사실은 바르티메오라는 이 거지 소경이 그냥 길거리에 앉아 맥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일반인들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만 예수님과 자신들의 전통,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심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분이 바로 바르티메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와 기다림이 있었기에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아무런 의미 없는 순간으로 만들었던 반면, 이 한 사람 거지요 소경인 이 사람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치유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행운의 순간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찰나의 순간에 신과의 만남을 가져야할 인간의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는 물음에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는 대답입니다.
순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대답입니다만 영악한 오늘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쉬움이 남는 대답입니다. 사는데는 보이는 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건강도 있어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권력과 명예도 있어야 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무엇,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찬미하는 사람 등등, 수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생일대의 기회, 어쩌면 로또복권의 당첨확률보다 낮을 수 있는 하느님 아들이요 약속된 메시아인 예수님과의 만남의 순간에 단 한마디 눈만 고쳐달라니, 당연하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눈뜸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어쩌면 이 짧은 대답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절제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단순함과 소박함이 흠뻑 묻어있는 대답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중요한 것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르티메오는 2000년 전 예리고의 거리에 앉아 있던 어느 한 개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미사에도 나와 있듯이 참된 제자와 믿는 이들의 모든 공동체의 표상으로써 참된 신앙인들이 가야할 바를 보여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은 관심과 노력을 통한 준비와 더불어 사심 없는 단순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있어 가장 부족하고 필요한 부분을 아는 절제된 깨달음이 신과의 만남을 위해 준비해야 할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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