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태풍이 휘몰아치고 간 마산에서 우리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수재를 입은 이웃 가정에 비하면 명함 내밀 것도 안되지만, 우리들의 집도 깨진 유리창을 다시 끼우고, 천장의 방수공사를 해야 했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오래된 건물이라 여기 저기 손볼 곳이 자주 생긴다. 태풍이 지나간 이후 손을 보려해도 일손이 부족해서 우리 집 차례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집수리를 해야할 때마다 자신의 집처럼, 꼼꼼하고 알뜰하게 고쳐주시는 아저씨께 이번도 부탁을 드렸다. 아저씨는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났고, 어떤 식으로 고치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리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쏙 알아채신 듯 고쳐놓고 가신다. 그러나 모든 아저씨들이 다 그렇진 않다. 초보 아저씨들이 하실 때는 열심히 온 힘을 다해서 하셔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온갖 힘을 다 빼신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별것 아닌데도 온갖 신경에 집안이 들썩거릴 때도 있고, 큰 일을 치뤄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일을 접할 때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걱정스럽고, 허둥대기 마련이다. 겪어보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거저 주신 「은총의 선물」이리라…. 아저씨의 일하시는 과정에서의 절차, 작게는 망치질과 톱질이 쉽게 보이는 것은 당신이 쌓아놓은 경험의 결과로 인한 것이다. 그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셀 수 없는 시행착오 과정이 있었고, 그것은 곧 나름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에 허둥거리고 걱정스러운 것은 아직도 「죽음」을 맞아야하는데, 어느 부분 그것을 받아드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령 성월을 맞으면서 내 삶과 지금의 사도직의 죽음에 대해 묵상해 본다. 우리는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은 두렵고 막막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여야 하고 그 이후는 맡길 뿐이다. 내가 수도자로서 아이들의 부모로 살아가는데 겪어 내야할 죽음도 마찬가지다.
이제 아이들의 옷가지를 정리해 줘야 할 때이다. 나는 이 때가 좋다. 성큼성큼 자란 아이들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소매가 팔목위로 쑥 올라간 모습을 볼 것이고, 동생들에게 주는 옷을 보면서, 이건 내가 언제 입었고, 그건 누가 언제 입었었는데…. 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옷소매가 작아진 그 사이에 우리는 서로 수많은 죽음을 맞아야 했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지겠지….
지금까지 이 지면을 통해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저의 나눔이 가정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그룹홈의 아이들과 실무자들의 생활을 여러분들께 알리는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삶의 고통과 기쁨은 함께 있다고 하지요? 삶의 크고 작은 죽음을 용감하고 의연하게 맞아 거듭나는 우리가족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힘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계속적인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리며, 기도 안에서 계속 뵙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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