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위령성월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특별히 되새기게 하는 이 시기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함으로써 우리가 받은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때이다. 이 뜻깊은 시기를 맞아 항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들을 알아본다.
생로병사는 인간의 필연적인 고통이다. 그 중에서도 죽음은 인간 존재를 유한하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고통에 속한다고 하겠다. 진시황이나 피라미드를 만든 이집트의 왕들을 돌아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인간은 다른 한편으로, 이 끊이지 않는 갈망을 어느 누구도 완전히 채울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죽음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 생활 속에서 죽음을 항상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당연히 생물학적인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한다.
그런 인간이 죽음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 가족과 친지, 이웃 등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처럼 삶이 유한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참 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죽음으로 인해 삶이 멈추고 인생 자체가 유한하고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비로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하느님은 인류 역사 안에서 그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다.
죽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죽음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죽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교회는 죽음이 인간의 원죄로부터 왔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교만으로 하느님을 거스른 원죄를 통해서 죽음의 세력이 인간을 지배했으며 인간의 죄의 결과가 바로 죽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인간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죽음에 대해서조차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그것을 극복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또 삶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듯이 죽음도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따라서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은 인간 생명을 당신의 뜻에 따라 좌우하는 분이시기에 죽음 역시 당신 뜻에 따라 좌우하는 분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념이었기에 죽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희망은 묵시문학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신약성서에서 죽음의 의미는 더욱 심화된다. 원죄로 인해 죽음의 세력에 떨어진 인간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되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선 예수 그리스도
인간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참 생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로 인한 부활의 희망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원죄로 인해 인간 자신에게 부여된 죽음과 정면으로 대결한다. 죽음과 정면으로 부딪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 그리스도를 이겼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죽음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결코 죽음은 없다고 선포한다. 그럼으로써 죽음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과정이며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긴 방법이 바로 그 죽음을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잔을 내게서 멀리 해달라』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다. 고통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도했고 결국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고통 받고 죽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결국 그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었다.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간 예를 우리는 순교자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적으로 불행이며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수많은 순교자들이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교회는 가르친다.
‘영원한 생명’으로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고통과 죽음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영원을 향하기보다는 현세의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인간들에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 예수는 분명히 말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루가 9, 23~24)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자신을 죽이고 생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얻을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구원의 희망임을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하게 일러준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 자신을 살리고 나아가 모든 인간을 영원히 살게 했음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을 믿고 이웃의 고통을 나눌 때 그리스도가 주는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오히려 생명을 얻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죽음은 없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26)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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