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2월 31일 북평성당에서 사목을 할 때의 일입니다. 이날 저는 중?고등 학생들과 함께 등산을 갔습니다. 청옥산을 태백시 하장면에서 출발하여 동해시 무릉계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상적인 성인의 걸음으로는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였습니다.
계절이 겨울이란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었고, 섣부른 등산 안내가의 말을 들고 판단한 것도 잘못입니다만 결과적으로 그 등산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겨울이었기에 정상 가까이에는 눈이 깊이 쌓여 있어 발자국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고, 더구나 아이젠 등 겨울 등산 장비를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에 시달린 학생들, 특히 어린 여학생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코스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등산을 했던 나에게 조차 체력적인 부담이 오는 코스였기에 같이 갔던 일행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고 일행은 무거운 침묵 속에 힘겹게 발을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윽고 짧은 겨울 해는 저물고, 좀처럼 등산은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8시 송년미사시간이 다가오자 저의 마음도 두려움과 성급함이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라도 날까 두려웠고, 또 미사시간에 늦을까도 걱정 되었습니다. 아마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무거운 침묵과 의미 없는 한 두 마디의 잡담으로 이어지던 산행에 갑자기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무릉계 입구로부터 약 30~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학생들의 소풍이나 노인들의 아침 운동 장소로 너무나 낯 익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주저앉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반전이 일어났던 것은 「이제 30~40분만 가면 이 등산은 끝난다」라는 그 장소가 주는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이 무언의 호소에 모두가 힘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늘어졌던 몸과 걱정에 파 묻혔던 어두운 마음은 사라지고 마지막이 보인다는 사실에 모두가 활력을 찾았고, 등산을 끝냈을 때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시작한 송년미사를 드리면서 삶에 있어 「마지막」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끝」이 있기에 인간은 행복과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껴 보면서 가장 의미 있는 송년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년 후 아마 12월 29일 경입니다만 죽음을 기다리는 한 신부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신부님의 모습, 같이 낚시도 다니고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선배 신부님이 죽음 앞에 놓여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 앞에서 저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무와 절망 알 수없는 무력감이 솔직한 마음이었고, 「왜?」 라는 의문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신부님은 1월 1일 죽음을 맞이합니다).
저는 그해 송년미사 강론을 준비하면서 왜 모든 것의 끝이 똑같은 아름다움과 행복이 아닐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97년 등산에 있어서의 끝은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반면 98년 한 신부님의 마지막은 낙담과 절망으로 다가올까를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러한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끝의 의미는 다른 시작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에게 등산의 끝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 될 수 있는 끝이었기 때문이고, 선배 신부님의 죽음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죽음과 연결되는 새로운 시작을 확인할 수 없는 저의 가치관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사건을 통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열쇠가 죽음의 신비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특별히 신부님이 1월 1일 새해 첫날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이 사실을 나름대로 다시 한번 묵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위령의 날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죽음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그러기에 위령의 날 우리가 할 일은 죽은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일 외에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는 위령미사의 감사송의 말씀처럼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발견함이 위령의 날 우리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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