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나 「올인」이라는 말이 유행인 듯하다. 절체절명의 고투를 계속하다가 가진 것을 모두 거는 승부수를 던진 뒤, 막판 뒤집기로 승자가 되겠다는 결론, 누구에게나 숨겨져 있는 영웅심을 자극하는 비상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21세기식 도박이기도하다.
욥기의 저자는 마지막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해답을 찾게 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극도의 부정과 저항 이후에 오게되는 전적인 긍정을 유도하고 있다고나 할까. 욥기의 이러한 구조를 학계는 독일 「관념론적 변증법」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하는데, 프레드리히 헤겔에 의하면 만물은 「변증법적 원리」에 의해 생성 발전된다. 「정」(正,These)이 있으면 이와 대립되는 「반」(反, Antithese)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 대립의 고통스런 과정은 「합」(合, Synthese)이라는 결론을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욥기가 제시하는 「정」(正)의 입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정」이 만나게될 「반」과 「합」의 결론은 다음 주에 제시될 것이다.
정(正)의 입장
욥기의 저자가 먼저 부각시키고자 했던 「정」의 입장은 「친구들의 주장」을 통해 표현된다. 이들의 논지를 요약하자면, 고통의 일차적 원인은 바로 고통 당하는 당사자의 죄에 기원한다는 것인데, 즉 고통을 죄의 벌(결과)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욥의 친구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스라엘 전통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신명기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이 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히 「결과론적인 입장」(인과율의 법칙)을 취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결과)을 죄(원인)로 인한 벌이라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세」가 없다고 믿었던 구약성서의 고대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모두, 악인이건 선인이건 예외 없이, 「쉐올」(죽음의 나라)에 가게된다고 믿었었다. 이러한 관점은, 선한 이는 반드시 살아생전에 축복을 받아야 하고, 악인은 죽기 전에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정식을 도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후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된다면 선행의 결과는 반드시 생전에 보상되어야 공평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객사나 요절, 급작스런 재해, 질병, 사고, 불임 등을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 여겼고, 장수, 무병, 부귀, 영화는 하느님께 성실했던 이들에게 주시는 보상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의 이러한 논지를 수긍하지 못한다. 그가 계속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자신의 무죄함이었고, 따라서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바 없으니 현재의 고통은 부당한 것임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욥의 억울한 심정은 이어지는 욥의 항변 부분(「반」(反)의 입장)에서 제시되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을 잠적시키는 이론
인간은 누구나 자기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의식에 영향을 받고 조정된다. 이러한 전통적 사고는 인간 안에 뚜렷이 각인되어 결코 포기할 수도, 소외시킬 수도 없는 깊은 정체성으로 작용하지만, 때로는 완고하고 절대적인 족쇄가 되어 현재의 삶과 인간 스스로를 가두는 폐쇄성 짙은 폭력으로 변하기도 한다. 제도와 관습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인간이나 삶이라는 주체는 소외되고 마는 당착(撞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욥기의 저자는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절대적이었던 기존사고의 부실과 착오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유다 민족을 둘러쌓고 있던 치명적 벽을 과감히 철거한다.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제도이자 이론이라고 절대적으로 신성시되어온 전통적 사상이지만, 어느새 하느님과 인간은 간데 없고, 맹목적 집착과 소외만 남아있는 억압기재로 전락했다면 그것은 벗어나야할 과거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제도나 이론 자체가 하느님과 인간을 가로막지 않도록 불순물을 제거하고, 보다 진정하고 흐뭇한 관계로 돌아가자는 것, 욥기가 제시하는 혁신적 신학이며 탁월한 지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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