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를 쓰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인생은 아니라고 봐요. 물질 만능, 속도 위주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숭고한 정신적 가치는 어떤 것인지 묻고 싶었어요』
원로시인 구상(세례자 요한.84)씨의 고명딸인 중견소설가 구자명(임마쿨라타.46)씨가 최근 첫 소설집 「건달」(나무와숲/288쪽/8500원)을 펴냈다. 지난 97년 마흔이라는 늦깎이 나이로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구씨가 표제작인 「뿔 - 건달 1」을 비롯해 그 동안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던 중단편 소설 7편을 모은 것이다.
구씨가 이번 작품에서 던진 「화두」는 「느리게 사는 삶」이다. 이를 위해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은 스스로 건달임을 자처하는 지대평. 대평(大平)은 자신의 이름처럼 태평스럽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며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살겠다」고 결심한 인물이다.
구씨는 주인공 대평을 중심으로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불운한 삶을 마감하는 대평의 아버지와 형, 또 세상 모든 부와 권력, 명예를 갖게 된 시점에서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는 친구의 삶을 통해 현대사회의 숨막히는 경쟁논리를 비판하고 「인간 본연의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저 역시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건달 기질」을 갖고 있다고 봐요. 모두가 마음속으로는 좀 더 편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 묶여 그러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대평」의 삶은 현실적으론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한번쯤 꿈꾸는 그런 삶이에요』
이밖에 13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실존적인 갈등과 고민에 빠진 학원강사의 모습을 그린 「숲 속의 빈터」나 혜성충돌로 인한 지구의 멸망을 가상에서 현실로 받아들이는 한 부부의 모습을 담은 「세계의 가을」 등 구씨의 작품속 주인공들은 현대사회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삶은 작가의 감칠 맛 나는 문장 속에서 참신하면서도 매력적인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구씨는 병환 중에 있는 아버지 구상 시인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이번 소설집 출간을 서둘렀다고 한다. 유명 문인 2세라는 꼬리표를 떠나, 소설가로서 어떤 작가관을 갖고 있는지 조심스레 살펴봤다.
『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 이 짧은 생애 중에라도 가능한 한 여러 형태의 삶을 체험하고 싶고, 또 그 체험들을 통해 몇 가지 엿보고 싶은 생의 비밀이 있는 내가 그 맞춤한 수단, 소설을 가졌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작가의 말」에서).
유명 시인을 아버지로 둔 소설가다운, 실로 「문학에 대한 한없는 열정」이 물씬 풍겨나는 대목이다.
구씨는 앞으로 지혜로우면서도 여유있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한 장편 소설을 구상 중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건달」 중에서도 「왕건달」의 삶이 그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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