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만은」 감기 없이 지나가겠다고, 제일 먼저 주사도 맞고, 귤도 한 바구니씩 사서 열심히 먹어보았지만, 결국 「이번에도」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차라리 걸리고 나니, 감기를 피해 다닐 때 보다 마음이 편하다.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땐 모든 것이 노심초사이고 불안하지만, 차라리 배신당하고 나면 의외의 꿋꿋함이 발휘됨과 비슷하다고나할까. 잠시동안의 불쾌감만 참을 수 있다면 실패나 고통은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나에게 발생한 모든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삶은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스스로의 무죄함을 주장할 때는 모든 것이 지독한 굴레이더니, 차라리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부터 욥은 드디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러한 궤적을 「반(反)」과 「합(合)」의 입장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반(反)의 입장: 욥의 항변
지난주에 소개한 「정」(正)의 입장(신명기적 사고방식)은 철저히 인과응보에 기초한 윤리적 사상으로, 이스라엘이 왜 선하게 살아야하는지를 잘 제시해주고는 있었지만, 「무죄한 이들의 고통」이나, 열심히 살아왔지만 불시에 고통을 당해야했던 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고통을 죄의 결과라고 본다면, 어린 아가의 죽음이나 죄 없이 살아온 욥 같은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유배와 유배 이후 혼란기라는 극도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일 안 해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어렵게 살아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복잡한 세상의 현상들을 상선벌악 이론이나 단순한 공식만으로는 모두 다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안에, 기존의 신명기적 사조(전통의식)는 서서히 그 의미를 상실해갔고, 심지어 인간들은 무죄한 이들에게 고통을 허락하는 하느님을 「폭력적」 존재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상의 변화를 욥기는 욥의 항변을 통해 여실히 제시하고 있다. 욥의 무죄선언은 곧, 그에게 고통을 아무런 이유없이 허락한 폭력적 하느님에 대한 고발이었던 것이다.
합(合)의 입장
욥의 친구들의 주장과 욥의 항변이 통합되지 못한 채, 서로의 갈등이 극대화될 무렵 하느님께서 직접 등장하심으로써 답을 제공하신다. 그런데 답을 주시는 방법이 좀 각별하다. 욥의 도발적 저항에 똑부러지게 응수할만한 대답을 주시는 대신, 천체와 자연세계를 보여주시며 그 모든 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만을 상기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발생한 건 그 때였다.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명제는 곧 자기 자신의 주인 역시 하느님이시라는 것에로 귀결되었다. 즉, 욥은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행복, 불행, 고통, 성공, 실패가 그 어느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의한, 하느님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불평과 억울함은 자기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착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욥은 더 이상의 항변을 그치게 된다. 더불어, 무죄함에 대한 주장 역시 자신의 교만에서 나온 결과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세상 어디에도 죄 없는 존재는 없다는 것, 「무죄하다」는 판결은 철저히 자기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규정이지,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분들께
한동안 방에 사막 사진을 걸어두고 본 적이 있었다. 사막을 다녀오신 어느 분의 말씀이 마음에 남아있어서였다. 그곳에 가면 무엇이 세상의 중심인지를 알게 된다고 했던가. 바람과 모래, 별과 태양이 살아있는 그곳에서 인간은 그저 피조물일뿐, 진정한 주인은 하느님 한 분뿐이심을 새삼 느끼게 된다는 거였다.
불평, 불만, 분노는 삶의 주인이 「나」라고 자부한 오만함에서부터 기인된다. 나의 죄를, 한계를, 초라함을, 그리고 나의 실패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시는 분들께,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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