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서울 봉천동 보라매눈높이센터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공연을 보러 온 어린이들로 북적거렸다.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열리거나, 세계적인 음악가의 공연이 마련된 것도 아니었다. 저녁 7시 정각, 행사의 주인공 이희아(히야친타·18·주몽학교 고등부 2학년)양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우뢰와 같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손과 다리에 장애를 가진 희아 양의 「작은 음악회」가 시작됐다. 이날 행사는 희아양의 이야기를 각각 동화와 만화로 각색해 최근 출간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고정욱/원유미 그림/대교출판/129쪽/7800원)의 출판 기념회를 겸한 자리. 출판기념회에는 책을 쓴 소아마비 1급 장애인 소설가 고정욱(안드레아.42)씨가 자리를 함께 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우리에겐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희아양. 그녀의 이야기는 육군 장교로 근무하다 지난 67년 대간첩작전 당시 사고를 당해 1급 척수장애인이 된 아버지 이운봉(요셉.58)씨와 어머니 우갑선(베르나뎃다.48)씨의 인연부터 시작된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부부는 10여년 만에 딸 희아를 낳았으나, 희아는 손가락 두 개, 다리도 기형인 선천성 1급 장애아였다. 의사마저도 포기한 성장 가능성이 희박했던 아이, 세 살 때는 두 다리마저 잘라낸 아이를 지켜보며 우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고.
그러나 기적의 성녀로 불리는 히야친타 성인의 은총이 희아와 함께 했던 것일까? 연필이라도 쥐게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고자 시작했던 피아노 연습은 마침내 어린 희아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게 되었다.
희아가 일곱살이 되던 해부터 본격적인 피아노 수업이 시작됐다. 가혹하다 싶을 만큼의 혹독한 연습이 이어졌고, 한국판 「설리반 선생」 조미경씨는 밤잠까지 줄여가며 희아에게 열성을 보탰다. 다리가 없는 희아를 위해 일본까지 찾아가 특수 페달을 제작했다.
건반 하나를 눌러 소리가 나기까지만 걸린 시간이 무려 3개월. 희아의 네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에 한음 한음 익숙해져갔다. 마침내 「나비야 나비야」를 처음 연주하던 날,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매일 열 시간씩의 뼈를 깎는 노력 끝에 희아는 전국학생음악 연주 평가 대회에서 유치부 최우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네 차례의 각종 대회에서 최우수상과 특상, 제19회 장애극복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며 주위를 훈훈케 했다. 어머니와 선생님의 뒷바라지도 컸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당당하고 싶었던 희아의 눈물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이제 희아는 누구보다도 밝다. 18살 또래의 소녀들과 특별히 다른 건 하나도 없다. 영화와 시를 좋아하고 배용준 오빠에게 사인을 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여고생일 뿐이다.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라 작은 「불편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꼭 세계적으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예요. 그래서 저처럼 몸이 불편하고 힘든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것만이 제가 어머니께, 그리고 선생님께 받은 큰사랑을 되돌려 주는 길인 것 같아요』
베풀며 살고 싶다는 마음은 한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그것을 닮았다.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나,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이희아양이 우리 곁에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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