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여러 가지 유형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의 유형 중 자아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것이 3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신격화하는 경향이요, 두 번째는 자족하기보다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는 경향이며, 세 번째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바로 자아와 관련하여 인간이 가지는 대표적인 비합리적 사고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고가 여러 과정을 거쳐 성숙한 사고로 변화되지 않을 때, 이것은 인간에게 갖가지 역기능적 태도와 정서상의 병리현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고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이러한 사고는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와 너무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본능적인 수준이기에 의식하기가 쉽지 않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변화시키기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은 비합리적이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비합리적이다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기준이 없기에 자신의 사고가 비합리적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기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올바르고 가치 있는 기준의 설정과 더불어,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 의지적인 노력이 있을 때 「비합리적 사고」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는데 그 해답의 일면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을 소개합니다. 이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태어나신 분으로 공적 활동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당시 백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요한 11, 11)라고 칭찬하셨고, 또 일부이기는 하지만 요르단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요한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분입니다.
이러한 요한이 오늘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데 루가 복음 사가는 이것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에 비유합니다.
여기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이사야서 40, 3절에 나오는 말로서, 그 분의 임무는 당시 바빌론 유배 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던 인물입니다. 골짜기와 산과 언덕을 없애고 큰길을 내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만나고, 백성들이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그분의 임무였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의 선포에 이 말씀을 적용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고, 하느님(의 구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는 「준비자」가 바로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하느님의 구원」이 곧 「예수님」 자신이기에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개를 통한 준비가 그분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의 요한의 역할은 말은 멋있게 들릴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가 수행해야 해야 할 일들은 결코 멋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준비자이기에 때가되면 뒤로 밀려나야 하는 역할, 요한의 표현대로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요한 3, 30)하는 조연의 역할이 그분의 일이고, 이러한 역할들은 모두 인간의 본능과 자아가 가지고 있는 비합리적인 사고가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대표적인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훈적인 사실은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역할을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사실입니다. 필자는 그 이유를 평소 삶의 기준을 하느님께 두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의 태도에서 찾고 싶습니다. 지면상 모두 설명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게 이야길 할 수 있는 것은 요한의 생애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시작한 삶이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을 기준으로 자신과 자신의 일,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재해석할 수 있었기에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만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성숙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사회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위기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는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을 설정하지 못함이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자신을 신격화하고 증명하려는 비합리적인 사고에 빠진 이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작은 역할을 묵묵히 받아들인 요한의 교훈이 삶의 전 영역에서 아름다운 교훈으로 다가오는 오늘이 아니가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