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방문한 일본 가톨릭교회의 성지는 놀라움을 주기 충분했다. 200여년 가까이 박해를 겪으며 스러져간 수많은 순교자들과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한국의 신앙 선조들이 겪은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일본 열도의 최남단 규슈지방에 남아있는 신앙의 흔적들과 순교자들의 혼을 찾아 나선다.
메달 물고 순교한 3만7천 순교자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시마바라반도. 온천으로 유명한 운젠국립공원이 위치한 이 반도의 최남단에 하라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성터라고 하기에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지만 이곳은 17세기 중반 가톨릭 신자 농민들의 반란인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난 성지다.
시마바라의 난은 가톨릭에 대한 탄압과 과도한 부역.중세가 계기가 되어 1637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90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당시 하라성을 근거지로 난을 일으킨 장수는 약관 16세의 독실한 신자인 아마쿠사 시로(프란치스코). 또 그를 따라 난에 참여한 약 3만7천여명도 대부분 신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에도 막부에서 파견한 12만 군사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패하게 된다.
사료(史料)는 당시 3만7천의 군사와 부녀자, 노약자들이 모두 전투 중 죽거나 포로로 잡혀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발굴 및 복원 작업이 한창인 하라성터에서 발굴되는 유골 대다수가 메달을 입에 물고 있어 놀라움을 준다. 쓰다 남은 총탄으로 만든 메달은 대부분 성모마리아나 십자가 모양이 새겨져 있다. 당시 신자들은 전쟁 중 성체를 모시지 못함을 죄스럽게 생각해 이를 대신해 메달을 입에 물고 전투에 참가했다고 한다. 하느님의 몸을 모시고 기꺼이 순교하겠다는 3만7천 순교자들의 거룩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성중에서 싸우는 자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것이며 구원의 은총을 얻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의 땅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지키는 것도 하느님에게 봉공(奉公)하는 것이다」
아마쿠사 시로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에게 당부한 말이 십자가만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라성 터에서 아직도 울리는 듯 하다.
하라성터에서 뱃길로 30여분을 가면 11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아마쿠사 제도가 눈에 들어온다. 선착장에서 버스로 20여분을 가면 아마쿠사 제도의 중심 도시인 혼도시(市)이고 시 외곽에 순교공원이 들어서 있다.
▲ 혼도시 순교공원 입구의 십자가상.
혼도시 아마쿠사 크리스찬 박물관
아마쿠사는 나가사키현의 히라도와 더불어 서양문물 및 천주교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1581년부터 1614년까지 대신학원인 코레지요(라틴어, 영어로 college에 해당)가 설치되기도 한 것으로 미루어 이곳 가톨릭교회의 깊은 뿌리를 엿볼 수 있다.
순교공원에 들어서자 왼편으로 커다란 무덤이 눈에 띈다. 순교자 천여 명의 유골을 모아 합장(合葬)한 「천인총(千人塚)」이다. 이곳에 묻힌 순교자들은 시마바라의 난 당시 하라성이 아닌 이곳 혼도에서 막부군과 싸우다 순교한 이들이다. 무덤 앞쪽과 상층부에 석탑이 자리한 데다가 제단 모양의 구조물이 무덤 정 중앙을 장식하고 있어 언뜻 불교적인 냄새를 풍긴다.
천인총을 뒤로하고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 10여기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아마쿠사 크리스찬 박물관」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 있는 「아마쿠사 시로의 진중기」(陣中旗). 국보로 지정된 진중기는 중앙에 커다란 성배, 그리고 성체가 그려져 있으며 이 성배의 좌우에는 합장한 천사가 그려져 있다. 깃발 맨 위에는 「매우 존경하는 성체의 성사 찬양하는 그림」(일본 문화재청 번역)이라고 포르투갈어로 쓰여져 있다.
시마바라의 난 당시 시로의 깃발이었던 이 진중기에는 3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혈흔과 실탄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 전투의 격렬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군대를 대표하는 깃발에 성체와 천사들을 그린 것은 당시 군사들의 신앙의 깊이와 성체에 대한 경외심을 엿보게 한다.
박물관에는 이밖에도 시마바라의 난 당시 군사들의 소장품과 십자가가 새겨진 가위, 십자가 목걸이를 한 무사상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울러 성모마리아를 닮은 불상, 부처의 몸체를 분리하면 십자가가 등장하는 불상 등 시마바라의 난 이후 박해를 피해 숨어서 종교를 지켜내야 했던 신자들의 처절하면서도 끈질긴 신앙을 엿보게 하는 다양한 유물도 볼 수 있다.
▲ 혼도시 「아마쿠사 크리스찬 박물관」
아마쿠사(天草) 순교제
박물관을 나서자 천인총 앞에서 「아마쿠사 순교제」가 열리고 있었다. 순교제는 시마바라의 난 당시와 이후 막부의 탄압을 피해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이 지역 모든 순교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신앙 선조들의 깊은 신앙심을 본받기 위해 마련되고 있다.
일년에 한번 10월 마지막 주 주일에 열리는 순교제는 구마모토현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교회행사지만 참석한 신자는 300여명에 불과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행사는 순교자들을 위한 미사, 성모님을 위한 꽃봉헌, 촛불 점화 순으로 이어졌다. 이어 신자들은 성모마리아 상을 앞에 세우고 촛불을 든채 1km 가량 떨어진 「기온 다리」(시마바라의 난 당시 막부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까지 행렬 한 뒤 이곳에서 순교자들의 영혼을 기억하는 편지를 담아 촛불을 배에 띄워 보내는 의식을 거행했다.
『성모님의 은총을 간구하며, 이 촛불이 세상을 밝히는 것처럼 선조 신앙인들도 거룩히 희생했음을 마음 속 깊이 새기나이다』 성모송과 흡사한 기도문을 낭송하는 선도차와 성모마리아 상, 그리고 300여명의 신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밝히며 순교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 아마쿠사 순교제 미사 후 성모마리아상을 천인총 앞에 모신 화동들이 꽃가루를 뿌리며 기도하고 있다.
▲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에 거행되는 아마쿠사 순교제 미사.
무덤까지 가져간 십자가
순례 다음날 찾은 곳은 혼도시에서 버스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오야노 섬의 「아마쿠사 시로 메모리얼 홀」이다. 지난 98년 지어진 이곳에서는 서양문물과 천주교의 일본 전래 배경, 아마쿠사 시로의 생애, 1582년 로마 교황청에 일본 사절로 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를 알현한 4명의 소년 신자들의 신앙과 생활 등을 엿볼 수 있는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곳 메모리얼 홀은 일본 가톨릭교회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인 오야노 정(町 : 우리나라의 동 또는 읍에 해당)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교회와는 사뭇 다름을 엿볼 수 있었다.
메모리얼 홀을 나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을 오르자 십자가 모양으로 장식된 화단 너머로 아마쿠사 시로의 동상이 서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동상 옆에 서 있는 비석이다. 여느 비석과 다를 것 없는 1.5m 크기의 이 비석은 관람객들을 위해 땅 속에 묻혀 있던 부분까지 파 놓았다. 그리고 땅속에 묻혀 있던 부분에는 거친 연장으로 깎아낸 듯한 십자가 모양이 아직도 선명하다. 비석에 십자가를 새겨놓으면 신자인 것이 탄로날 것이기에 땅 속에 묻힐 부분에 새겨놓은 것이다. 신자였던 망자를 그냥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땅 속에 묻힐 부분에 십자가 모양을 냈을 신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오야노섬 아마쿠사 시로 메모리얼 홀 뒤편 순교공원.
그리고 박해를 이겨내며 끈질기게 지켜온 신앙은 260여년이 지난 1865년, 비로소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다. 잠복신자들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가사키현의 오우라 천주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