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수품 50주년. 하느님 앞에서야 찰라에도 못 미칠 티끌 같은 시간이지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야 어찌 짧다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수없이 가시밭길을 걸어온 민족의 수난 와중에서 사제 생활을 했기에 지난 세월을 돌아보자면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이들어 오면서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 지난 91년 「사상과 시대의 증언」 I, II와 94년 고희 기념 문집으로 낸 「삶을 생각하며」, 그리고 「현재와 과거, 미래, 영원을 넘나드는 삶」 3권 등 모두 6권의 수필 및 자서전격 책자들이다.
얼추 이 여섯 권의 책으로 나의 삶을 회고하고, 말한 바 행한 바를 정리한 듯 하나 여전히 남는 것은 있다.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남아 있어 지금은 못다한 말들을 담은 7권째 문집을 생각하고 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바, 더욱이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제대로」와 「한 만큼」의 정신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들여서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이 한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정치, 사회적으로 어지러운 문제들이 나오는 것이다.
제각기 역사를 조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야 있겠으나, 나름대로 역사와 세상의 변화를 보면, 세상은 점점 더 각 개인들이 자신의 특권들을 되찾아가는 도정에 있는 듯하다. 사실 모든 특권은 개인의 것이고 개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보면 인간 개개인이 지닌 자신만의 특권들을 어떤 한 사람이나 조직, 집단이 모두 빼앗아 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소수가 지닌 특권들은 사라지고 개인들에게 돌려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특권의 집중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중간지대의 특권층이 나타났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 자본가들, 거대 언론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통신과 교통 수단의 발달로 세상이 바뀌고 인터넷으로 모든 사람이 일거에 통교함에 따라 사회 구조의 변화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 소수가 갖고 있던 권리와 특권이 밑으로, 개인들에게로 내려간다.
역사를 보면 빼앗긴 특권을 돌려받을 때마다 사회는 진통을 겪었고 많은 부작용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그것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누구나 같은 인간 존재라는, 신앙과 교회가 제시하는 인간의 전망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들이 스스로의 특권들을 찾아가고 있는 시대적 흐름은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사회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때로는 선도하면서 함께 호흡하고 함께 변화해나간다.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는 바로 그런 교회의 모습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쉬움은 이제 교회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서, 교회가 먼저 실천함으로써 미래 지향의 전망을 제시하고 역사의 흐름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신권(神權)이나 교리, 윤리적인 가르침은 변할 수 없는 것이지만 행정이나 인사 등의 문제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들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정치, 경제의 개혁 바람들은 고무적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의 흐름에 있어서 교회가 그 동기를 제공하고 주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교회가 신권으로 행하는 고유한 것들 외에 행정, 재정, 인사 등 사회 변화, 발전과 함께 가야하는 것들은 변화가 시급하다. 교회가 먼저 개혁과 쇄신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삶을 회고하는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먼저 적는 것은 내 지난 삶과 교회, 사회가 역사 안에서 구원을 향해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보잘것 없는 내 개인적인 시간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가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에, 개인 삶을 돌아보는 속에서도 교회와 사회에 대해 내가 느끼고 겪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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