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초상이 나면 우리는 의례 『연도났다』고 하고 초상집에 문상을 갈 때면 『연도하러 간다』고 한다. 신자들은 상가집을 찾아가 이렇게 연도를 바침으로써 조의를 표시하고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여러 명이 어울려 우리 전통 가락의 운율에 맞춰 구성지게 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죽은 이들과의 「통공」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연도」(煉禱)란 말은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바치는 기도라는 뜻으로 연옥의 연(煉)자와 기도의 도(禱)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이다. 연도를 서방 교회의 기도문을 번역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연도는 위령기도의 일종으로서 우리나라 전통적인 곡(哭)의 음률과 그리스도교의 기도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토착화된 훌륭한 예이다.
효의 정신이 담긴 공동체의 기도로서, 서방교회에는 이처럼 상장례와 관련해서 공동체적인 기도를 전통적으로 바치는 곳은 없다. 연도는 하나의 기도이면서 훌륭한 노래이고 이웃과의 친교와 봉사의 행위가 병행되는 상제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연도는 우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위령기도이다.
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신자가 죽으면 그를 위한 여러 가지 전례 행위들을 해왔다. 초대교회 때 죽음을 「천상 탄일」이라는 뜻으로 「생일」(Dies natalis)라고 부를 만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부활 신앙에 충실했고, 죽은 이들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위령기도의 역사
죽은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전례와 기도를 바쳤다는 기록은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테르툴리아노, 히폴리토 등에게서 공적으로 위령기도를 바친 기록이 있고 4세기에는 에우세비오를 비롯해 위령기도에 대한 언급들이 많이 발견된다.
중세 이후 위령기도는 교회 안에서 널리 사용됐는데 1274년 리용 공의회는 위령기도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선포했고 이는 피렌체 공의회(1439)에서 재확인됐다. 여기에 대사에 대한 교의의 발전으로 인해 위령기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1476년에 교황 식스토 4세는 위령기도를 통해 연옥 영혼에게 대사의 은혜를 전달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트리엔트 공의회는 연옥의 존재를 다시 확인했다.
이처럼 죽은 이를 위한 위령기도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관한 교리에 뒷받침을 받는다. 하느님은 자신의 선하심을 개인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더욱 풍요하게 나눠준다. 그래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하는 모든 사랑과 희생의 행위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승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도라고 부르는 위령기도를 널리 사용해왔다. 지난해 가을 주교회의 정기총회의 결정에 따라 현재 한국교회는 현대 감각에 맞추고 그 깊이를 더해 한국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상제례 예식으로 새롭게 펴낸 「가톨릭 상장례 예식서」에는 공식적인 위령기도로서의 새 연도를 포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바쳐오던 「성교예규」와 내용상으로는 차이가 있으나 그 기본적인 틀은 큰 차이가 없다.
연도의 시작은 언제?
그러면 이렇게 전통적으로 바쳐지던 연도는 언제 시작됐는가? 이에 대해 정확히 밝혀주는 문헌은 없다. 1864년 「천주 성교 예규」라는 목판본 책이 지금까지 사용된 연도 책의 근본이다. 이는 1859년 다블뤼 주교가 필사본으로 전해온 한문본을 당시 교회 실정에 맞게 간추려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도를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와 예식이라는 넓은 범위로 볼 때 이 책 이전에 이미 한국교회 안에서는 천주교식 장례 예절과 기도가 행해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연도를 할 때 선창과 후창을 구분해 시편을 노래하라고 규정돼 있고 특히 시편은 반드시 노래로 바치도록 하고 있다. 이미 시편기도를 위한 노래가 구전되고 있었으며 따라서 연도는 기도문인 동시에 노래로서 이미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문헌과는 별도로 광의의 연도에 대한 역사는 한국 교회 초창기인 17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유교 문화권이었던 당시 조선 사회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유교의 상제례 문제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제사 논쟁에 대한 1742년 교황청의 엄격한 금지령이 내려지고, 전통적인 조상 제사를 포기해야 함에 따라 조선 교회는 인륜에 해당되는 장례와 제사를 새로운 의식으로 진행해야 했다. 바로 이것이 한국에서 연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연도가 이러한 제사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만들어졌고 누구에 의해 처음 시작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문헌은 없다. 하지만 연도와 유사한 내용의 기도문을 포함한 한문 기도서가 박해 시대때 체포된 천주교인들에게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선조들은 이미 박해시대부터 연도책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의 연도가 이미 한국교회 창립 초기부터 시작됐으며 점차 한국 상황에 맞는 연도로 변화됐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1886년 한불 조약을 계기로 신앙의 자유를 갖게 된 한국교회에서 장례 봉사는 주요한 선교의 원동력이 됐다. 1900년 이전에 이미 여러 곳에서 연령회가 조직됐고 장례 사업을 전개했으며 이는 전교에 도움이 됐다.
박해의 원인이 됐던 상장례의 해결책으로 시작된 연도가 한국 교회 역사 안에서 중요한 사도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 및 생활 전통이 그리스도교 기도와 절묘하게 조화된 연도는 한국 교회의 풍요로운 자산 중 하나로 그 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위령 성월에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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