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폐막한 서울대교구 시노드 최종 문헌의 핵심적인 교회 쇄신의 방향은 한마디로 「참여하는 교회상」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말로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평신도의 교회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론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강조되고 확인된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 그리고 교회와 세상 안에서 평신도들의 소명과 역할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평신도의 교회 참여를 강조한 공의회의 정신은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아직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평신도는 「주변적 또는 보조적 인물로 자리매김」되어온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다.
지적만…변화 노력 없어
오늘날 한국교회 평신도의 교회 참여 현실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먼저 교회 안에서 전례 생활과 사도직 단체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신자들 가운데 남성 신자들의 비중이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대다수 남성 신자들은 신앙 생활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고 이는 교회 활동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인 요인이다.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인식 부족과 평신도의 소명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것도 평신도들이 스스로 적극적인 교회 참여를 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많은 평신도들이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의존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젖어 자신들의 소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스스로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직자 중심의 권위주의적이거나 경직된 교회 운영도 평신도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교회 참여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다. 교회 운영과 각종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어렵게 하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각 교구의 시노드 진행과정에서 수없이 지적됐지만 정작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시노드 진행 과정에서 실시된 신앙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회 운영 및 활동에 있어서 사제 고유의 직무 외 부문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한 신자들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신심, 봉사활동이나 소극적인 본당운영 참여로 충분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는 평신도 스스로의 자신감 부족이기도 하고 성직자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전문성을 지닌 평신도들이 교회 생활과 교회 운영에 원활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미 평신도 교리교사가 폭넓게 활용되는 교리교육 분야 외에도 환경 및 생명 운동, 통일과 민족화해, 매스 미디어 등 문화활동, 사회복지를 비롯한 각종 사회사목 활동을 비롯해 분야별로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특수사목 분야와 국제 연대 등 모든 부문에서 평신도의 활용 잠재력은 엄청나다. 더욱이 성직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신학 연구 분야에서도 최근 들어 평신도 신학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시대적인 요청에 공감
평신도의 교회참여 확대가 시대적인 요청이라는 점에는 이미 우리 교회 안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최종 문헌에서도 이는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는 「평신도」 영역 6항에서 본당과 교구의 사목평의회도 참여하는 교회상의 구현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7항에서 『서품이 필요하지 않은 교회의 직무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교회의 여러 분야의 직책을 평신도들이 폭넓게 맡는 것』이 교회의 성숙과 발전에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시노드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회운영 관련 설문조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평신도의 교회 운영 참여 방향을 제시했다. 즉 응답자의 대다수인 76.9%는 신자들의 신앙과 영성 생활 외의 본당 운영에 평신도들이 대폭 참여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추세를 볼 때 전문성을 갖추고, 적절한 교육을 통해 양성된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인 요청임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교회의 제도와 조직, 사목적인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선 평신도 스스로 자신의 소명을 제대로 인식하고 교회 가르침을 익힘으로써 교회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성직자 의존적인 자세를 탈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상과 교회 안에서 스스로의 소명과 역할에 대해 투철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도적으로 교회 참여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적극적인 투신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회 당국은 평신도를 사목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동반자적인 참여 자세를 확립시켜줄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참여적인 교회 제도와 구조를 정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제기되어온 요구들을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돼야 할 것이다. <박영호 기자>
◆ 평신도 관련문헌
평신도 신원 일깨우고 마땅히 걸어갈 길 제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여러 가르침을 통해 평신도의 신원과 세상 속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평신도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선행을 베푸는 것 정도로 스스로의 몫을 축소시켜 하느님이 각자에게 심어주신 보화를 묵히고 있다. 마르지 않는 다양함과 생동감으로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심어주고 있는 평신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돌아보는 일은 내면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평신도 그리스도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20년을 지낸 교회와 세계에 있어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1987년에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으로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우리 모두가 도유를 받아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들」 곧 「도유받은 자」들이 되었으므로,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평신도에 관한 교회의 가장 유권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는 이 문헌은 특별히 『평신도들은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며 현세질서에 그리스도 정신을 불어넣는 일에 평신도들을 초대하고 있다.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실을 담고 있는 4개 헌장 가운데 하나인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은 제4장에서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평신도를 규정하며 『평신도들이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자신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모든 현세 사물을 조명하며 관리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권고 ‘가정 공동체’
1980년에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으로 발표된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는 가정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현대세계에서 평신도들이 꾸려 가는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을 들려주고 있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이 1982년 낸 「학교 내의 가톨릭 평신도 : 신앙의 증인들」은 평신도 특유의 소명으로 진리의 전달자로 교육현장에서 활동하며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사명에 독특하게 참여하고 평신도들의 몫을 통해 구원사업의 협력자로 초대된 평신도의 위상을 다시 한번 드러내주고 있다.
회칙 ‘사회적 관심’
요한 바오로 2세가 1987년에 발표한 회칙 「사회적 관심」은 결론에서 『현세적인 사물을 그리스도교적인 투신에 의해서 활성화시키는 일은 바로 평신도들의 과업이며, 그런 활동에 의해서 그들은 평화와 정의의 증거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한 ‘여성의 존엄’
특별히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에 발표한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에서 『인류가 매우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된 여성들이 인간성의 상실을 막는 데 큰 공헌을 할 수 있다』며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여성들이 마리아처럼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고 여성의 존엄성을 되찾는 데 도움이 돼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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