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아예 빨리 죽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정해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김미카엘(43)씨. 요즘 들어 얼굴이 밝아졌다. 젊은 나이에 부인과 아이들을 두고 떠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것 역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나머지 죽음의 과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강력하게 수술을 권하던 가족들도 이제는 조금은 편안하게 김씨의 곁을 지키고 있어주는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말기암 환자들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지막 선고를 받고 난 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마련이다. 눈꼽만치도 안되는 성공률을 기대하면서 온갖 수술과 치료에 시달리며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날 것인가, 혹은 나름대로 지난 삶을 정리하면서 보다 인간적인 죽음을 맞을 것인가.
김씨는 비록 「혹시」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생명을 되살리기보다는 그저 죽음을 지연시키고 고통의 시간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고통스러운 수술과 치료보다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가능해진 데에는 호스피스가 있었다.
호스피스란?
호스피스(Hospice)란 말기암 등 현대 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적절한 통증 치료로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보다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의료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호스피스는 사람보다 질병 위주로 치료가 이뤄지는 현대 의학의 병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의학은 그 본질상 인간을 돕는 것이 목표였으며 의학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질병의 치유와 수명 연장의 측면에서 많은 공헌을 하게 됐다.
하지만 반면 의학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을 신비의 대상에서 생물학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보게 했고 때에 따라서는 인간을 치유하는 의학이 오히려 인간 존엄성을 부분적으로 훼손할 가능성까지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현대 의학으로 질병을 치유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증상들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질병이 가져오는 인간의 상황에 대한 바람직한 도움을 주는 것이 어렵게 됐다. 따라서 의사들 자신이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쉽지 않아 죽음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돕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서 호스피스, 완화의학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됐고 그 발전이 시대적인 요청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호스피스는 질병 치료보다는 환자에 대한 돌봄을 중시하면서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거나 연장하는 어떤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대신 통증 조절과 증상 조절로 환자를 도우며 임종이 가까워지면 장례절차, 유언, 슬픔 관리 등을 통해서 가족들에게 도움을 준다.
호스피스의 역사
호스피스(Hospice)라는 말은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Hospes(손님), 또는 Hospitum(손님 접대, 손님을 맞는 장소)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가 쉬어가던 휴식처를 의미했다. 즉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휴식처를 제공해주고 간호를 베풀어준데서 호스피스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호스피스는 181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자비의 수녀회 수녀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가난한 환자들을 수녀원으로 데려다가 임종 준비를 시킨데서 유래한다. 그 뒤 1967년 영국 런던 교외에 세운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가 시초가 돼 세계적으로 보급됐다.
한국에서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1965년 강릉의 갈바리 의원에서 말기암환자들을 위해 처음 시작했다. 갈바리 의원이 1981년 호스피스 병동을 마련할 무렵 광주에서 천주의 성 요한 병원을 운영하는 천주의 성 요한 수사들도 가정 호스피스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호스피스 활동은 단연 가톨릭 교회가 선구자였으며 지금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가톨릭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1982년 가톨릭 의대에서 호스피스를 시작해 1987년 성모병원과 강남성모병원이 호스피스과를 개설했고 이듬해에 강남성모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신설됐다. 이후 전국 가톨릭계 병원으로 호스피스 활동이 확산됐고 다른 종합병원들과 개신교에서도 호스피스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2년에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가 창립됐고 1995년에는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내에 호스피스 교육 연구소가 개설됐으며 일반 본당에서도 호스피스 관련 단체가 생겨났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본다. 소극적으로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존재의 문제에 직면하는 말기 환자들에게 그래서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게는 영적인 돌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호스피스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종교였고 지금도 대부분의 호스피스 단체와 기관들을 종교에서 운영한다.
따라서 호스피스는 개인의 종교적 선택을 존중하고 운영기관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하지만 죽음이 그저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니며 그 자체가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울러 인간 삶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에 대해서도 호스피스는 분명한 대안으로 보인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의료비 부담, 치료에 따른 육체적 고통, 삶의 의미 상실 등으로 생명을 포기하려는데 대해 호스피스는 이런 생각을 방지하고 죽음 속에서 부활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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