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권의 시집은 늘 가시처럼 따가웠거나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 거친 느낌도 들었다. 골라낸들 별로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시집 열 권이 이 늘 철근처럼 무거워 그 무게를 덜어내려는 욕심으로 선집을 엮어보기로 했다. 열 권이라는 배부른 숫자가 주는 허전함의 공복이 선시집을 꾸미는 계기가 되었을라나…』(서문에서).
시인 신달자(엘리사벳.60.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씨가 첫 시집 「봉헌문자」부터 「아버지의 빛」까지 아홉 권의 시집 중 애착이 가는 작품들만을 추려 시선집 「이제야 너희를 만났다」(문학수첩/177쪽/6500원)를 냈다. 언뜻 보아도 시력(詩歷) 39년 시인의 관록과 연륜이 느껴지는 이번 선집은 신시인의 시 세계를 「중간 결산」하는 그런 작품으로 해석될 법하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1970년 「현대문학」 지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 신달자. 시인을 떠올리면 언뜻 낡은 흑백필름처럼 스치는 게 있다. 바로 수필집 「백치애인」과 장편소설 「물위를 걷는 여자」. 지난 80년대 말 우리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다. 「신달자」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려준 「효자」작품이지만,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
『제 본업은 시인이고 시로 등단했는데, 세상은 저를 소설가로 기억하더군요. 「외도 아닌 외도」를 하고 나서 참 잃은 것이 많았어요. 꼭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느낌이었죠. 다시 시인으로 돌아오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은 시 쓰는 일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시 앞에 다시 서게 되네요. 시는 제게 있어 참으로 「질투 심한 애인」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선집의 제목은 자연스런 결과. 「너희」는 당연히 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76) 시인의 시 세계가 「사랑」을 노래한다면, 신시인의 그것은 「자아 성찰」과 「가족」이다. 특히 「가족」은 그의 문학관인 동시에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그의 시편들에 「가족」이란 화두가 자리잡게 된 것은, 어쩌면 10여년에 걸친 남편과 시어머니의 병수발 등 시인의 질곡 어린 삶과 무관치 않다.
77년 세례를 받았으니, 어느덧 신앙생활 30년차. 작품과 관련한 종교관을 조심스레 물었다.
『굳이 작품 속에 하느님과 예수님을 내세우지 않아도, 연애시를 써도, 인생사를 노래해도 언제나 그 안에는 하느님이 계셨어요. 하느님은 제 삶과 작품을 지탱해 준 절대적인 힘이자 지향점이었습니다』
이제 신시인은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와 11번째 새 시집을 준비중이다. 시인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삶과 문학의 모습들이 새로운 것으로 도약하기 위한」 또 하나의 여정이다.
『그 동안 제 시에 스스로 고통의 가시면류관을 씌워 놓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면류관을 벗기고 싶어요. 그저 하느님이 불러 가시는 그 날까지 시를 쓸 거예요. 끝까지 시에 닿게 하는 힘은 오직 「시를 사랑하는 행복한 힘」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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