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을 보면서 사랑에 대한 색다른 정의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의 저자는 「달리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실패하거나 상처를 입어도, 다시, 여전히,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으로 나는 이해하였고,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시련을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사랑」과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지금껏 사랑해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무차별한 고통으로 상처를 주시는 하느님을, 여전히 태연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그분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믿음을 확고히 간직할 수 있을지, 욥이 도달해야할 내면의 진심은 바로 이에 대한 답안에 숨어있었다.
이제 그의 첫 번째 시련을 살펴보기로 하자(1, 6~22).
시험의 시작
『하루는』이라는 도입 관용구로 시작된 첫 번째 사건은, 지상이 아닌 「하늘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느님은 욥의 성실함과 신앙을 칭찬하시는데, 세상을 두루 살피고 돌아온 사탄이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건의 갈등을 야기시킨다. 사탄에 의하면 욥의 흠없는 모습은 「인과응보적 사고」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연극일 뿐이지, 남다른 신앙에서 우러나온 진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전통사고방식에 의한다면, 집과 재산 많은 자손 등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모범적 삶을 필수적으로 살아야하고, 따라서 욥은 기복(祈福)적 마음으로 선행을 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욥을 사이에 두고 야기된 하느님과 사탄의 대립은 사탄의 제안으로 타결점을 맞게 되는데, 욥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그에게 주었던 재산과 명예를 모두 빼앗아 보자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었다.
주어졌던 복을 박탈당하고도 여전히 하느님을 경외한다면 욥의 신앙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심인 것이고, 반대로 하느님을 욕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한다면, 그의 성실함은 계산되고 조작된 것임이 증명된다는 논리였다. 이 제안과 함께 장면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전환되고, 미처 손 쓸 수조차 없는 재앙들이 연이어 욥에게 들이닥친다. 결국 욥은 모든 재산과 자식을 순식간에 잃어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성실하게 신앙을 지켜나간다. 1차 시련은 하느님과 욥의 승리로 종결된 것이다.
“나의 종 욥”
하느님은 욥을 『나의 종』이라고 부르시는데(8절), 이는 1인칭 소유 대명사를 통해 구체적인 친근감을 부각시켜주는 호칭이다.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때 붙이신 조건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을 잘 제시해 주는데(욥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라 12절 참조), 이러한 하느님의 배려는, 「진정한 생명을 찾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고통」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고통은 인간에게 「죽을 것」 같은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실상 하느님께서는 「죽지 않을」 만큼만의 고통만을 허락하신다.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기 위한 것」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고통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시험은, 전통적인 인과응보 논리가 사탄적(부정적)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저자의 의도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자신이 지적하고자 하는 전통의식(신명기적 인과율)을 사탄의 입장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사상이 던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보상 없는 신앙, 가능한가?
욥에게 들이닥친 시련은 욥이 사랑한 실체에 대한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가 사랑한 것이 하느님(God) 자체였는지, 아니면 「행복」 혹은 「선」(Good)은 아니었는지…. 돌아갈 다른 곳이 있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듯, 보상을 바라는 신앙이라면 그건 종교도 믿음도 아니다.
기복과 기적만을 절대시하는 것이 하등종교가 가지는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Good 자체만을 사랑할 때, God는 실종될 수 있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해온 것이 무엇인지, 정말 믿어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검증하게 하는 것, 고통과 시련이 가지는 궁극적 기능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