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좋은 것만이 인정받는 세상. 누구나 한번쯤은 「대박」을 꿈꾸는 세상. 많이 가진 것이 인정받는 세상. 교회는 그런 세상 한가운데 있다. 교회의 정신은, 그 빛과 소금의 역할은 혼돈속에서 갈수록 그 진가를 잃어가고 있다.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을 맞아 가난하고 작지만 정이 넘치는 곳, 친교와 일치, 나눔과 봉사의 모범을 살아가는 신앙공동체를 찾아 그들의 애환과 희망을 담아본다. 세상의 가치와 잣대를 거스르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기다려야 할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기에…
어느덧 돌아온 대림시기. 사회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어수선한 시기에 교회는 구세주 탄생을 기다리며 희망을 안고 차분하게 새해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삶을 겸허히 돌아보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한 이 때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목말라 하는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의 불꽃을 다시 한번 지펴야 할 것이다.
“낙담만 할 순 없어”
108년의 유구한 신앙 역사를 자랑하는 교우촌 예구마을. 거제도 지역의 신앙 중심으로 남다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던 예구마을 신자들. 하지만 지난 9월에 불어닥친 태풍 「매미」로 인해 그들은 큰 좌절감을 맛보았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하며 눈물로 밤을 새운 날도 부지기수. 그 말많은 정부와 자치단체의 복구 지원금은 언제 도착할지 오리무중. 혹 지원받더라도 그리 기대할 만한 정도는 아닐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낙담만 하곤 있을 수 없어 분연히 털고 일어났다.
마음을 추스르고 우선 쓸만한 가재도구부터 정리해 나갔다. 내일 네일이 따로 없었다. 양식장 복구, 그물이나 어구 수리 등… 많은 일을 해냈다. 힘을 합치니까 어려워만 보였던 일들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 집을 수리하는 것도 그랬다. 모두 힘을 모아 한 집 또 한집 수리해 나가다 보니 어느덧 들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집들이 복구됐다.
올해 초 그럴싸한 집을 지었던 오현조(비오?68) 할아버지. 파손된 부분을 일단 판넬로 수리했다.
『1년에 집을 두 번씩이나 짓는 심정을 아시는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집이 엉망됐는데도 반파로 처리하더군. 그나마 겨울이 오기전에 이렇게라도 집을 수리해 들어갈 수 있어 다행이야』
오할아버지는 『집이 완파돼 컨테이너에서 새우 잠을 자며 겨울을 보내야하는 사람들이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현재 예구마을에선 아홉가정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생활의 불편함은 참을 순 있지만 「집을 다시 지을 수 없게 되면 어떡하나」하는 근심에 잠을 설친다』고 한다.
시아버지와 남편, 딸, 아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던 양선애(유리안나,43)씨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단다. 컨테이너가 너무 좁아 남편하고만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다. 시아버지는 시동생 집에, 고3인 딸은 이모집에, 아들은 외가에서 생활하고 있다.
양선애씨 남편인 박영춘(도민고,46)씨는 『태풍 덕분에 컨테이너에서 살아보게 됐다』며 씁스레한 웃음을 짓는다.
양선애씨는 집을 새로 짓는데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하소연한다. 자치단체에서는 집을 2층으로 지워, 1층은 창고나 차고로 활용하며 유사시에 물이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게 하라고 한단다. 그런데 지원금은 전파일 경우 3600만원. 이중 순수한 지원은 1440만원이고 나머지는 갚아야 할 융자금이다. 이 돈으론 사실 1층만 짓기에도 어렵다. 또 「재해가 나더라도 보상이 없다」는데 동의한다는 각서도 쓰라고 한단다. 특히 관광특구로 지정돼 있어 건축 허가를 받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일반 지역의 집 짓는 기준이 적용되길 바라고 있다.
양선애씨는 『날씨가 추워지니까 떨어져 사는 식구들이 더 생각난다』며 집을 빨리 지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길 소망했다.
이러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무성의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삶의 터전을 다시금 만들어 가고 있는 예구마을 신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는 것은 주님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여러 신자들의 사랑과 관심.
사랑나눔 행사 펼쳐
예구공소를 관할하고 있는 지세포본당 신자들은 이재민들을 돕기위해 지난 10월말부터 「사랑의 바자」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사랑나눔 행사는 인근에 있는 여러 본당에서 연이어 펼쳐지고 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행사 수익금을 복구 경비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전국 각 본당 신자들이 보내오는 정성도 예구마을 신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으며, 최근엔 샬트르 대구관구 수녀들이 겨울용 침구류를 보내왔다. 『몸이 따스해 지면 마음도 훈훈해 질 것』이라는 격려 편지와 함께.
예구마을에선 지금 천주교 열풍이 불고 있다. 이유는 예구마을 신자들이 신자아닌 가정에도 전국 교회에서 보내오는 의연품을 똑같이 나눠 갖고, 힘을 합칠 일이 있으면 언제나 신자들이 솔선하기 때문. 물질적인 이유가 아니라 「신자들의 나눔의 마음이 비신자들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하다. 이러한 「비신자 가정의 감동」은 간접 선교의 효과까지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말한단다.
은인들을 위한 기도도 자주 봉헌된다. 예구공소 신자들은 시간날 때마다 공소에 모여 기도를 바치며, 또 매 주일 봉헌되는 공소미사에서 항상 은인들을 위해 기도한다. 지세포 성당에선 틈틈이 주임 이정근 신부의 집전으로 은인들을 위한 감사미사가 봉헌된다.
『공소신자들에게 바자 등을 통한 수익금을 전달하려하면, 「성당이 있어야 우리가 있기 때문에 성당 복구가 더 급하다」며 받지 않을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공소신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느낄 때마다 피곤함이 사라집니다』
이정근 신부의 말이다. 이신부는 태풍이 들어 닥쳤을 때부터 지금까지 복구를 위해 무척이나 바쁘다. 신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랴, 지붕이 날라간 성당 복구에 신경쓰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한다.
집이 완파돼 공소 별채에서 살고 있는 박미악(로사,72)할머니. 신자들의 배려로 공소에서 3개월째 혼자 힘들게 생활하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묵주가 손에서 떠나지 않는 박할머니는 『애쓰시는 젊은 신부님이 건강을 잃지 않길 항상 기도한다』며 이신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희망의 불꽃 활활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한려해상국립공원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예구마을. 순교자 윤봉문(요셉)의 형 경문(베드로)이 박해를 피해와 생활하며 거제 지역에 신앙의 씨앗을 뿌린 아름다운 교우촌인 예구마을. 남다른 태풍 피해로 절망하다 신앙을 토대로 재기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는 예구마을 신자들에게 구세주 아기 탄생이 가져다 줄 준 희망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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