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부활시기와 대림시기를 맞으면 각 성당에서는 「판공성사」(判功聖事)를 받기 위한 신자들의 줄이 늘어서곤 한다. 일년 내내 고해성사에 소홀했던 신자들도 이때만은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모든 신자들이 1년에 2번, 즉 예수 부활과 예수 성탄 전에 고해성사를 반드시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판공성사로서 이때의 고해성사는 원칙적으로 성사표를 받은 신자들만이 받을 수 있다.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는 교회법을 참조해 판공성사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제90조)
『모든 신자는 일년에 적어도 한번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해야 한다. 이 영성체는 원칙적으로 부활시기에 이행돼야 한다(교회법 제920, 9889조 참조).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교회법 제989조 참조)』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실시하는 판공성사에 따라 제출한 성사표는 교적에 기록돼 신자들의 신앙 상태를 관리하고 지도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그런데 교회법상에는 1년에 한 번으로 규정돼 있는 고해성사의 의무를 왜 한국교회에서는 2회로 규정하고 있는가. 이는 한국교회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이뤄진 사목적 조치이다.
즉 한국교회에서는 예로부터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본당 사제가 각 신자 가정의 기도생활, 교회생활, 가정형편 등을 파악하고 개인의 기도생활이나 교리, 신앙 지식, 성서, 전례 습득 정도 등을 시험이나 구두 면접을 통해 일일이 알아본 뒤에 성사를 주었다.
이것이 바로 판공성사의 유래로서 사목적인 필요에 따라 시작된 전통이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 생활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제도로 자리잡은 것이다.
굳이 성사표를 제출하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괜히 신자들을 번거롭게 하거나 감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충실한 신앙생활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판공을 실시하는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데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성사를 못보거나 안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성탄판공을 받은 사람이 28.7%, 부활판공을 받은 사람이 28.1%로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판공성사가 교회법상 신자 생활의 최소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처럼 비율이 낮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자들의 철저한 인식과 사목적인 배려가 요청된다.
그러면 판공성사에 대한 사목적인 배려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다양한 교육을 통해서 고해성사가 신앙생활에서 지닌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고해성사 보는 것을 꺼려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고해성사가 결코 사제 개인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성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나아가 고해성사를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해주는 아름다운 성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고해성사를 의무로 여길 때 성사보는 것을 더 어렵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고해성사가 주는 은총과 정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고해실로 향하게 될 것이다.
또 일정 시기에 판공성사를 집중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 실제로 여러 본당과 지역에서는 이를 위해 판공성사를 연중 내내 실시하거나, 상설 고해소 설치 등의 방안을 강구하기도 한다.
판공성사는 모든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규정이고 기꺼이 수행해야 할 의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이것만은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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