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5월 24일은 현대 가톨릭 교회의 전례 역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날 로마의 4대 성당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성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일명 설지전 성당)에서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근 40년 동안 가톨릭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거행되어오지 않던 미사 곧 트리덴틴 미사 또는 비오 5세 미사라고 불리는 옛 미사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카스트릴룐 호요스(Dario Castrillon Hoyos) 추기경의 주례로 성대하게 봉헌되었다.
옛날의 장엄한 라틴어 미사를 그리워하던 수천 명의 신자들이 구미 각 지역에서 구름처럼 몰려와 몇 십년 만에 봉헌되는 이 미사에 참례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감격에 찬 사람들은 비단 이들 평신도만이 아니었다. 최근에 자기 교구 사제들의 어린이 성 추행 문제로 사임을 한 미국 보스턴 대교구장이었던 로(Bernard Law) 추기경을 포함한 몇몇 추기경들과 적지 않은 수의 각급 성직자 수도자들이 이 감동의 미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강론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옛 미사 경본에 따라 라틴어로 진행되었다. 모든 미사 참례자에게는 영성체 또한 손으로 모시지 말고 무릎을 꿇고 혀로 받아 모시도록 안내되었다.
이 날을 계기로 교회는 이제 옛날로, 다시 말해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으로 복귀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적어도 그를 위한 탐색을 진행하고 있는가? 이 비오 5세 미사 전례와 요즘 우리가 매일 봉헌하고 있는 새 미사 전례(Novus Ordo,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성문화되었다고 해서 바오로 6세 미사라고도 불린다)를 둘러싸고 벌어져 온 몇 가지 문제들을 소개하면서 그 의미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비오 5세 미사의 특징
먼저 우리 같은 전교 지역의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대에게는 아주 낯설 수 밖에 없는 이 옛 미사(이 미사와 더불어 사목을 해 보신 분들에게는 정말 원로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는 트렌트 공의회 직후 비오 5세 교황에 의해 성문화되었다고 해서 트리덴틴 미사 또는 비오 5세 미사라고 불린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 개혁이 이루어지기까지 근 400년 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거행되어 왔던 이 미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미사는 라틴어로만 봉헌된다. 그리고 미사 집전자는 신자들과 함께 제대를 향한다. 집전자와 신자들이 향하는 방향은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동쪽이다(다시 말해서 제대는 항상 동쪽에 모셔져 있다). 성체는 무릎을 꿇고 혀로 받아 모신다. 미사 경문이 새 미사에 비해 길며 미사 봉헌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전체적으로 훨씬 장엄한 느낌을 준다.
현행의 바오로 6세 미사와 차이가 나는 바로 이 서너 가지 특징이 공의회 이후 교회 안팎으로 엄청난 논쟁을 야기한 것이다. 물론 한국 교회에는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말이다.
▲ 비오 5세 미사는 라틴어 사용과 함께 주례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영화 「이재수의 난」 중의 한 장면.
르페브르 대주교
비오 5세 미사가 로마의 한 대성당에서 그것도 교황청의 현직 성직자성 장관에 의해 봉헌되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2차 공의회를 반대하여 로마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프랑스의 르페브르(Marcel Lefevre) 대주교의 추종자들과 로마 교회와의 관계이다.
흔히 전통주의자들(Traditionalists)이라고 불리는 르페브르 대주교와 그의 추종자들은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으며 공의회와 더불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들, 특히 전례 개혁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1988년 교황의 허락 없이 자기 손으로 주교들을 서품해 교회로부터 파문되었으며 1991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유럽을 비롯해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에 수십 만이나 퍼져 있다. 교회로서는 단지 2차 바티칸 공의회 및 그 결과들에 반대하고 비오 5세 미사를 고집할 뿐, 그 밖의 가톨릭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이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둘 수 만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5월 24일의 사건은 당연히 이들 르페브르 추종자들에 대한 바티칸의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청의 입장
비오 5세 미사를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르페브르 대주교의 추종자들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가톨릭 교회 안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 바오로 6세 미사(Novus Ordo)보다 옛 비오 5세 미사를 선호하고 그리워해 온 게 사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조직들을 형성하여 옛 미사의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교황청 요소 요소에 끊임없이 청원을 했으며 또한 알게 모르게 그들끼리만 모여서 비오 5세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울러 이 문제는 광범위한 신학적인 반성과 토론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마침내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의교서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를 반포함으로써 비오 5세 미사를 원하는 신자들로 하여금 지역 교회의 직권자에게 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특전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다. 또한 교황청 안에 이 옛 미사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특별 위원회 (Ecclesia Dei Commissio)를 설치하여 그 위원장으로 바로 성직자성 장관 카스트릴룐 추기경을 임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5월 24일 바로 이 카스트릴룐 추기경이 교황의 특별한 허락과 함께 축복까지 받아 로마에 있는 교황의 대성당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마죠레에서 장엄하게 비오 5세 미사를 봉헌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옛 비오 5세 미사에 대한 참여 열기가 어느 정도까지 확산될 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는 전통주의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오른쪽」 바람에 맞서는 「중도」 및 「왼쪽」 바람 역시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당장 로마 순례 중에 우연히 그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의 볼멘 소리가 전해진다. 「교회가 옛날의 그 성직자 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가?」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