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신월3동 주택가. 화려한 네온사인도, 번듯한 아파트도 없다. 키 작은 건물과 재래식 시장을 지나면 「여기가 거기 같은」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들이 이어질 뿐 어둑어둑해지는 골목길 어느 곳에도 아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학교가 파할 시간인데 그 많은 아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가만, 어디선가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 다다른 곳은 주택가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적색 건물. 운동장에서는 목청껏 뛰노는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인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듯 왁자지껄 정신이 없다. 모두들 초등학교에 다니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다.
이곳은 살레시오수도회 신월동 공동체가 운영하는 오라토리오. 「오라토리오」란 본디 이탈리아어로 성당의 「기도방」을 뜻하는 말이나, 현재는 살레시오회가 지역 아이들을 위해 세운 「공부방」 또는 「방과 후 교실」의 모임 이름이 됐다. 초기 「오라토리오」의 역사는 수도회의 창립자 돈보스코 성인이 150여년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길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초대했던 공동체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재잘거리는 아이들 사이에 푸른 눈의 외국인 할아버지가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 큰 키에 우수에 찬 깊은 눈매를 가져, 헐리우드의 미남 로맨스 배우를 연상시키는 얼굴. 바로 「오라토리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기수현(Rinaldo Facchinelli, 리날도 파치넬리?84?살레시오회) 신부다.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팔순의 노사제지만, 그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얼굴에 흐르는 행복한 여유와 웃음, 그리고 그의 몸에서 악기처럼 울리는 아이들의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그것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그의 존재는 인자한 할아버지, 함께 놀아주는 친구, 엄한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올해로 45년째. 기신부는 그렇게 오라토리오를 지켜왔다.
1920년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농부의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기신부는 동네 근처의 알프스 산을 뛰어 놀며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의 삶은 이탈리아 베로나의 살레시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바뀌게 됐다. 검은 수단을 펄럭이며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아주는 살레시오 신부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과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때부터 기신부는 주저 없이 살레시안의 길을 선택했다. 「나도 저분들처럼 아이들 가운데 있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신부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는 1950년 사제품을 받고 일본에서 8년간 선교사로 활동하다 당시 광주교구장 현하롤드 주교의 요청으로 1958년 7월 한국 땅을 밟았다. 그때가 기신부의 나이 서른 여덟이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선교사가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해 「어학당」부터 찾는 것과는 달리, 그는 한국 아이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먼저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어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성향, 장래 희망 등에 관심을 가졌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관심과 사랑」은 통한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젠 자신의 고향 나라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이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어가 서툴다.
기신부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오라토리오가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허름한 지하 교실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었으나, 마땅한 공간을 구할 수 없으면 나무 그늘과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서라도 지역 아이들을 초대했다. 1966년 당시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오라토리오에는 이곳을 찾는 아이들의 수가 하루 평균 200여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76년 구로3동본당 오라토리오 학생이었던 최은균(32)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신부님 방에는 늘 만화책이 가득 꽂혀 있었어요. 우리들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신부님 방을 향해 뛰는 거예요. 신발 짝을 내던지고 정신없이 사제관으로 들어서면, 우리 말고도 또래 동네 아이들이 모두 거기 모여있었어요. 다들 독서(?)에 열중하고 있으면, 신부님은 그 큰손으로 한명 한명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어요. 만화책 보기가 지겨워지면 우리 모두는 신부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죠』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기신부이지만 미사 시간에 떠들거나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친구들을 방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불호령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은 기신부에게 귀를 잡히거나 볼을 잡혀야 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어깨와 팔다리에 매달리며 장난을 친다.
지금까지 오라토리오를 거쳐간 아이들만 해도 수 백 여명. 옛날 오라토리오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되어 기신부를 찾아오고 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기신부는 이날만큼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들은 오라토리오를 졸업한 후에도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삶에 도움을 나누고 있으며, 살레시오 협력자회의 일원으로 돈보스코 성인의 사도적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도 여럿이다.
오라토리오를 찾는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 불우한 환경에 놓여있는 아이들일수록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도 심사는 뒤틀려 있게 마련. 이들을 끌어안아 웃음을 찾아주기 위한 기신부의 비법 아닌 비법은 끊임없는 사랑이다.
『요즘 들어 늙는 것도 은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옛날엔 아이들이 혹시나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는데, 요즘엔 여유가 생겼어요.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절대로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도 생겼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을 쭉 지켜보다가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싶으면, 그 아이 옆에 붙어서 몇 번 이름도 더 불러주고, 손도 잡아주며 머리도 쓰다듬어 줍니다. 그러다 보면 녀석이 먼저 울음을 터뜨리며 마음을 열어요』
기신부의 사랑이 아이들에게만 쏟아진 것은 아니다. 교육의 동반자인 교사들에게도 골고루 분배됐다. 신월동 오라토리오의 나도하(루도비코.44) 교사는 『신부님께서는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는 수시로 교사들을 불러 다과를 함께 하며 격려해주시고 지원해주셨다』고 전한다.
기신부의 오라토리오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목표는 지금도 변함없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충실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왔다.
『때로는 오라토리오를 값싼 학원으로 인식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초기와는 달리 동네 곳곳에 학원이 들어서면서 오라토리오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어요. 그러나 오라토리오는 절대 보습학원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공부도 하면서 함께 어울려 뛰어 놀 수 있는 공간, 말 그대로 「아이들만의 천국」인 셈이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올 동네 아이들을 기다리는 듯, 그의 파란 눈동자는 항상 운동장이 보이는 창가에 머물러 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이젠 아이들이 예전처럼 많이 모여들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죽는 날까지 곁에 있어줄 소중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희망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랑 함께 있으면 마냥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걷기도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제 모습이 보이면 골목 저 끝에서부터 달려와 저한테 안깁니다. 「오늘 축구 시합에는 신부님도 꼭 같이 뛰자」고 떼쓰는 아이들 보면서 사는 거지요. 허허』
『부족한 삶을 웃음과 기쁨으로 채워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며 빙그레 웃는 벽안의 신부. 아이들의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는 노신부의 얼굴에 하느님 나라의 평화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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