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경 우리나라 사제들의 생활비는 얼마였을까?
최근 번역 발간된 대구대교구 초대교구장 「안세화 주교 공문집」을 들여다보면, 당시 일본 경찰이 신부들의 수입원을 물을 때 「한 달에 생활비 20원 받는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의 물가를 정확히 알 수 없어 20원이 어느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액수임에는 분명하다.
이처럼 안주교 공문집을 들여다보면 1911년부터 1938년까지 일제시대 사회상과 교회 모습을 눈에 그릴수 있다. 주교가 본당 사목방문 시 꼬박 사흘을 사제관에서 머물렀던 일, 당시의 주교 영접 방법, 가뭄에 처해 명령기도를 지시한 일,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의 신자현황 비교, 당시 신자들의 신앙상태와 사목자의 고심, 대신학교의 교육개혁 등등 하나같이 재미와 함께 오늘날에도 곱씹어볼수 있는 대목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1912년 「명치천황 서거에 즈음한 특별기도 당부」 공문이나, 1933년 일본 신도(神道)에 관한 공문에서는 당시 교회와 일제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도 있다. 신자들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는 경우 「애국심의 표현을 전제로」 참배해도 된다거나, 학교에서의 신사참배를 허용하면서도 종교적인 것으로 의심받게 하지 말아야한다는 등의 표현은 당시 교회가 가진 고뇌를 엿보게 한다.
「안세화 주교 공문집」은 이처럼 일제시대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의 교회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사료집이다.
1964년 교구청 화재로 공문이 소실된 후 다시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것이 2000년 낙산본당 문서고에서 발견됐고, 이를 이종흥 몬시뇰이 번역하고 영남교회사연구소(소장=구본식 신부)에서 편찬했다. 원문은 대개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간간이 일본어까지 인용되곤 했다.
※문의=(053)254-0151 영남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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