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의 아버지가 6살과 5살된 남매를 한강에 내 던져 버리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건강한 부부사랑의 열매이며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의 생명이 거리낌없이 내쳐질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이렇게 무너졌는지 아쉬움도 남는 새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아기들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참가정, 참사회를 만들어가기를 신생아실 창문 밖에서 기원해본다.
▲ 첫 입맞춤 아기의 볼에 입맞춤하고 있는 산모 박미선씨. 새록새록 평안히 잠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엄마는 어느덧 출산의 고통을 까마득히 잊어 버린다.
지난 금요일 오후, 서울의 한 종합병원 분만대기실에서 만난 김성열(프란치스코.32)씨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출산예정일을 닷새 앞둔 이날 새벽 아내가 갑자기 진통을 느끼자 김씨는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초산이라서 힘든가보네요. 걱정하지 말라며 들어간 아내가 자꾸 눈앞에 스쳐서…제가 도와줄 수 만 있다면 뭐든지 할 텐데요』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벌써 몇 번이고 마주쳐 낯익은 간호사가 분만실 문을 열고 나왔다.
『예쁜 공주님이네요. 축하합니다. 산모도 건강하세요』
순간 맥이 빠진 김씨는 그대로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열 달의 기다림과 그 열 달 보다도 더 길게 느껴진 여섯 시간의 초조함 속에 찾아온 아기.
「아가야…축하한다. 여보 수고했어」
김씨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 뇌인다.
분만대기실 옆 신생아실. 갓 태어난 자신의 왕자님, 공주님을 보기 위한 가족들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인다. 10여명 안팎의 신생아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발길이 분주한 가운데 아빠의 시선이 멈춘 곳은 아기의 발목에 채워진 표찰. 자신의 아이임을 확인한 아빠의 얼굴이 환히 변한다.
『아가야, 아빠 여기 있다. 어∼어∼, 내 얼굴 보더니 웃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충북 충주시 이영일 산부인과 가족분만실. 남편 유재우씨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출산의 고통을 아내에게만 떠넘길 수 없어 분만실에 들어온 유씨. 남편이 옆에 있어서인지 아내의 표정이 밝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출산은 순탄히 이뤄졌다. 아직 탯줄에 의지한 채 세상 밖을 경험한 아기는 곧바로 엄마의 가슴에 놓여진다. 아기가 가장 먼저 듣는 소리는 엄마의 심장박동. 열 달 동안 익숙하게 들었던 엄마의 심장소리를 가장 먼저 들으며 아기를 안정시키고 모성애를 느끼게 하려는 병원의 배려다.
『정말 감격적이에요. 아기가 무사히 태어난 것도 기쁘지만 엄마의 몸 속에서 아기가 나와 가슴에 안길 때의 모습을 볼 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이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이곳 산부인과에는 신생아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태어난 아기는 목욕을 한 뒤 바로 엄마가 있는 입원실로 옮겨진다.
입원실에서 만난 박미선씨는 사흘 전에 아기를 출산했다. 제왕절개로 낳은 탓에 사나흘 정도 입원하며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 모유를 먹이며 아기를 보는 박씨의 모습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자 아기가 잠시 얼굴을 찌푸리다 엄마가 볼을 맞대며 입을 맞추자 이내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든다. 이제 갓 사흘 된 아기. 아직 이름도 없지만 순간 순간 변하는 아기의 표정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한편 분만실과 신생아실을 거쳐 들른 신생아 중환자실에서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곳에 있는 아기들은 미숙아이거나 태어날 때 뇌 손상을 입어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로 인큐베이터 안에서 투병중이다.
인큐베이터에 붙은 명찰을 보니 태어난 지 석 달이 지났는데 방금 신생아실에서 본 아기보다도 더 왜소하다. 코에 꽂힌 호스로 힘겹게 숨을 내쉬며 생명을 지탱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오래도록 지켜보기가 어렵다.
『고통을 못 이기고 울음을 터뜨릴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죠. 아기들 모두가 건강을 되찾아 하루빨리 엄마 품속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한 간호사가 갑자기 기침을 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를 안고 달래며 말한다.
생명탄생의 고귀한 순간을 함께 하는 기쁨과 지금도 어디선가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기들, 그리고 태어난 순간부터 중환자로 분류돼 산소호흡기와 영양주사로 생명의 끈을 이어나가는 아기들의 모습이 한데 겹친다.
분만대기실이 다시 한번 술렁거린다. 또 한 명의 아기가 세상의 빛을 한가득 머금고 태어난 모양이다. 새해에는 더 많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희망의 외침으로 사회 곳곳에 퍼지길 희망해 본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그리고 우리에 이어 이 사회를 이끌어갈 꿈이고 희망이다.
▲ 신생아실은 생명의 탄생하는 순간의 환희와 감격, 그리고 기쁨과 고통이 점철된 공간이다.
◆ 심각한 저출산율…세계 최하위
생명경시 풍조 확산
낙태 만연 등이 원인
기다림과 초조함 속에 갖가지 에피소드를 남기며 태어나는 아기들은 한해 평균 50여 만명. 하지만 그 숫자가 점점 줄고 있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출산율은 1.17명으로 저출산율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는 영국(1.64명)이나 일본(1.33명)보다도 낮은 세계 최하위다.
경기도 분당 제생병원 신생아실을 찾았을 때 그곳에 있던 아기는 고작 두 명 뿐이었다. 30여 개의 간이 침대는 모두 비어 있었다.
충주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이영일(사도요한.45.청주교구 연수동본당)씨는 『95년 개업할 당시 한 달 평균 100 여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요즘은 50여명에 불과하다』며 『병원이 많이 생긴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요즘은 산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생명경시 풍조와 자녀양육 부담, 성 개방 및 퇴폐문화 확산 등으로 연간 150∼200만 건이 행해지고 있는 낙태도 이러한 출산율 하락과 연관이 있다.
낙태시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이씨는 『낙태하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지만 대부분은 다른 병원을 찾아 아이를 지울 것이 뻔하다』고 말한다.
한해 50여만의 아기들이 태어나 부부뿐 아니라 출산의 순간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보다 서너 배 많은 숫자의 아기들은 채 태어나지도 못한 채 엄마의 뱃속에서 숨을 거둬야 하는 현실을 접하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