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대화」라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과 갈등의 시작일 때가 있다. 자신의 입장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을 상대할 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게 그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이미 생겨났을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신명기적 의식이라는 전통적 잣대만을 가지고 자기 이론을 피력하던 친구들은 결국 그들의 높은 이상과 고상한 논리성에 갇혀, 이론의 범주 밖에서 존재하던 욥의 「실제적」 고통과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이유가 무의미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바로, 자신들이 배운 것만을 믿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득하겠다던 오만함과 그로 인한 치밀한 폭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엘리후의 등장(32~37장)
자기 변론에만 급급하던 욥과 세 친구는 결국 타결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만을 입히고, 급기야는 말하기를 포기해버린다. 이러한 대화의 실패와 그로 인한 무거운 침묵을 욥기 32, 1은 또 다른 친구 엘리후의 등장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의 등장과 연설(32~37장)은 본론의 첫 부분(세 친구와의 논쟁: 3~31장)과 끝 부분(하느님의 응답: 38~42, 6)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물론 이에 반대하는 이도 있다. 베르너, H. 슈미트 같은 이는 엘리후의 등장이 오히려 본론의 처음과 끝을 단절시킨다고 주장한다).
엘리후는 이미 등장했던 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첫 태도를 취하는데(32, 2), 그의 분노는 욥만이 아니라 세 친구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욥의 주장에 변변한 대답조차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세 친구들에 대한 비판이었다(32, 3).
엘리후 연설의 신학적 의미
엘리후의 연설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의미는 「고난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엘리후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고통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고난」은 인간이 자기 중심 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하느님의 존재를 만나고 알게 하는 교육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를 그 고통으로 구하시고 / 재앙을 통하여 그 귀를 열어주십니다』(욥 36, 15).
이러한 고난 이해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오던 세 친구들의 입장을 전복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고통을 죄의 결과, 벌로서만 이해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오히려 진정한 삶과 생명이 시작되는 자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후 연사의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업적을 찬송하는 찬양시가 등장하는데(36, 26~37, 24) 이는 본론의 끝 부분, 즉 「하느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엘리후 연설의 후대 첨가 근거
이러한 엘리후의 연설은 비교적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유는,
1) 고통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라는 비교적 후대의 해석을 보여주었다는 점,
2) 세 친구가 보여준 실패는 기존의 지식인들(전통 지혜학파)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며 이에 대한 유감 표현이라는 점. 즉 그들의 이론은 인간의 고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데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
3) 엘리후가 언급되는 곳은 오직 여기뿐이라는 점 등이다.
세계적 성서학자 알롱소 쇠켈은 엘리후의 연설이 욥기의 원저자보다 한 두 세기 후에 살았던 한 독자에 의해 첨가된 부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왜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한 정답은, 역설적이게도,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 즉 물리적으로는 아무리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절박함 속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 상황 「고통」은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그 정답을 알게 하고, 이를 통해 어떠한 상황과 처지에서도 견디어 낼 내면의 힘을 갖게 하는 지혜와 교육의 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욥기는 분명 절절한 한 인간의 슬픈 사연을 서술하고 있지만, 절대로 「비극적 이야기」는 아니다. 비극을 통해서, 역으로, 삶의 희망과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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