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지면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가톨릭신문의 제안이 있은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다른 이들에게 내 삶이 어떻게 비칠 것인가 하는 염려보다는 도대체 나같은 사람이 다른 이들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 이르게 됐다.
올해 들어서만 몇 차례에 걸쳐 이어진 신문사측의 곤혹스러운 제안을 여러 이유를 들어 누겨 왔지만 아무리 보잘것없는 삶도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가치가 있지 않느냐는 주위의 성화도 적지 않아 결국 곤란의 길에 빠져들고 만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태어난 달만 달리해 1927년 같은 해에 세상에 나온 가톨릭신문과는 적잖은 인연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인연이 곤란함을 자초한 모양새가 되었지만 오롯이 「하느님의 도구」로 살고자 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희망인 나에게 이렇게 글로 엮어나갈 인연도 늘그막에 하느님께서 지워주시는 십자가가 아닌가 싶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부족하기만 한 내 옆에는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기라도 하듯 늘 주님께서 더 큰사랑으로 함께 해주셨던 것 같다. 마치 모자란 자식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는 부모님처럼. 이렇게 하느님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은총이라 생각하고 그 은총을 조금이나마 기워 갚는다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내 삶을 벗겨, 주님이 지워주신 십자가를 지려한다.
그간 내가 드러나기를 꺼려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기를 어려워한 것은 혹여 내가 의도치 않은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그로 인해 주위에 괜한 폐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해서 따름일 뿐이다. 젊은 시절 20년 넘게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경험도 이런 조심스런 마음을 갖도록 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생각마저 주위에서 곡해할 수 있으나 하느님만은 내 마음을 아시리라 믿는다.
다만 인터뷰나 만남 자체를 거절해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이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그들에게 양해와 용서를 청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1927년 9월 17일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본래부터 천주교 집안은 아니었다. 유교를 신봉하고 가문의 전통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지극히 평범한 선비 집안이었다. 그런 내력 가운데서도 나를 비롯한 가족을 당신께로 불러주신 것 자체가 크나큰 은총과 신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스무살되던 1947년 성탄절을 앞두고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토마스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나게 되는 과정도 주님의 안배하심이겠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하기까지 한 나를 기꺼이 불러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경외감마저 든다.
당시 내가 살던 마을에는 공소가 하나 있었는데 방학 때면 한국에 선교사로 와 계시던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이 찾아오셔서 학생들을 불러모아 과자를 나누어주시며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곤 하셨다. 해방 후 먹을 것마저 부족하던 때라 과자라면 찾아보기도 어려운 시절이어서 아이들은 과자를 얻어먹으러 자연스럽게 성당을 찾게 되었다. 이런 아이들 틈에 끼어 나도 한두 번 성당을 찾다 어깨 너머로 교리를 배워 세례까지 받게 된 것이다.
영세 뒤에는 그야말로 습관적으로 성당을 다녔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는 늘 한가지의 의문이 따라 다녔다. 그것은 「하느님이 계시다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어지럽고 불의가 넘쳐나는가」 하는 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까기 한 이런 물음은 이후에도 한참이나 나를 괴롭혔다.
혹시 지금 누군가가 50여년 전 내가 가졌던 고민으로 고뇌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 물음을 하느님께로 던지지 말고 인간에게, 특히 자신을 향해 던져보라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사람을 사랑하셔서 인류가 스스로 회개하고 당신께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실 뿐임을 깨닫게 된 것은 좀 더 철이 들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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