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쇄신과 교회의 구조적인 변화 시도와 함께 사회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절실해진 사회사목의 중요성에 바탕을 두고 다각적인 시도들이 이어졌으며 기존의 활동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이처럼 사회나 교회적으로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시대적인 요청을 파악하고 그에 응답하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최근 몇 년간 한국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지난 해부터 생명과 가정의 소중함을 수호하기 위한 범교회적인 노력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지체돼 있는 선교의 성과를 북돋우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해 단지 신자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넘어서 교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소공동체의 활성화 역시 그 한 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2004년 한국교회는 지난해에 이어 새 복음화를 위한 전국 차원의 노력과 함께 각 교구별로 사목적인 방향을 정립하고 각 기구와 단체별로 지속적인 쇄신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올 한해 동안 한국교회에서 열릴 다양한 행사들을 살펴보고, 각 교구와 기관, 단체 등에서 지향하고 있는 사목 방향들을 알아본다.
사목교서, 가정사목에 초점
지난해 대림 시기를 맞아 일제히 발표된 각 교구장 2004년도 사목교서를 통해 보면 각 교구의 올해 사목 방향에서 가정과 생명 문제가 가장 초점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환 위기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왔으며 특별히 지난해 두드러진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가정의 가치에 대한 문제이다.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가정이 붕괴되는 사례들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형태와 의미의 가정이 우리 사회에서 지니는 중요성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교구장 주교들은 한결같이 사목교서에서 가정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관련 프로그램의 실시를 모색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사목교서에서 가정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정 공동체의 성화에 노력하고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대교구의 경우에는 아예 올 한해를 「가정의 해」로 선포하고 교구의 모든 사목적인 노력을 가정 복음화에 집중할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대전교구는 「복음적 친교 공동체」로서의 가정 공동체를 위한 사목적 배려를 천명했고, 부산교구 역시 가정 공동체 안에서의 복음 나누기 생활화를 강조했다. 청주교구는 「새로운 복음화」의 첫째해로서 「가정 공동체 복음화의 해」로 지정했으며 군종교구는 군이라는 특수 현실 속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 가정의 복음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대구는 ‘가정의 해’ 선포
지난해 교구 시노드를 마무리한 서울대교구는 올해를 시노드 후속 작업의 원년으로 삼아 교구 쇄신을 위한 바탕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가정사목과 함께 교구의 사목구조를 연구하고 재정비하는 것이 일차 목표이다. 교구장 주교는 사목교서에서 교구 사제평의회와 사목평의회의 활성화, 현장 중심의 교구청 조직 활용, 지구사목 활성화를 지향하는 교구장 대리 제도 강화, 지구장 중심의 지구 공동사목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광주대교구는 올해 특별히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을 공부할 것을 권고하고 신앙의 핵심인 미사 안에서 믿음의 삶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특별히 교구 설립 70주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전례헌장이 알려주는 참된 예배를 지향함으로써 성숙된 공동체를 이뤄나간다는 것이다.
▲ 지난해 교구 시노드를 마무리한 서울대교구는 올해를 시노드 후속 작업의 원년으로 삼아 교구 쇄신을 위한 바탕을 마련할 계획이다.
내적성숙 위한 노력 강화
한국교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복음화율이 9%대에 진입했다. 지난 98년말 복음화율 8%를 달성한 이래 4년만에 9%에 진입한 한국교회의 선교 성과는 사실 오늘날 세계 어느 지역에 비해서도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90년대 이후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다. 신자 증가율, 주일미사 참례율, 쉬는 신자 비율 등 신앙 생활의 충실도를 반영하는 수치는 모두 악화됐다.
이에 따라 각 교구에서는 내적 성숙을 기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일환으로 일부에서는 복음과 성서 말씀에 더욱 충실할 계획이고, 또다른 일부에서는 소공동체를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주교단 공동 사목교서 발표
주교회의 혹은 전국 차원에서 내년 한 해는 굵직한 행사들이 열릴 예정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제8차 정기총회이다.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대전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릴 FABC 총회의 이번 주제는 「생명 문화를 창조하는 아시아 가정」이다.
한국교회는 총회에서 논의되고 제안되는 내용들과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고려해 가을 정기총회 때 가정을 주제로 한 공동 사목교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주교회의는 이미 지난해 10월 열린 가을 정기총회에서 이같은 결정을 한 바 있다.
공동 사목교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내용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주로 가정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과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 가정에 대한 교회 가르침, 가정의 가치를 고양할 수 있는 대안들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는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교단이 참가함에 따라 모두 200여명의 아시아 주교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를 위해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를 중심으로 사목교서의 내용을 준비하고 전국적인 설문조사도 고려하고 있다.
한편 4년마다 열리는 세계성체대회가 10월 10일부터 17일까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다. 「새 천년기의 빛과 생명인 성체성사」를 주제로 열리는 제48차 세계성체대회의 한국 대표로는 장봉훈 주교가 선출된 바 있다.
가정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출범한 「생명31」운동은 올해 들어 보다 구체화된 가정 수호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2월 7일 명동성당에서 생명수호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보다 실천적이고 범국민적인 생명운동으로 확산시켜나갈 생각이다.
생명 문제와 관련해 생명윤리법 제정을 위한 교회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는 지난해 3월 독자적인 생명윤리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년여의 논쟁을 거쳐 마련된 정부의 생명윤리법안이 국회의 관심 부족으로 이번 회기에 또 다시 폐기될 것으로 우려가 됨에 따라 더욱 생명윤리법안 제정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가정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출범한 생명31운동은 올해 들어 보다 구체화된 가정 수호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 집중 지원키로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우선 성숙한 장년의 교회로서 한국교회의 해외 원조가 단순히 원조 요청국에 대한 단순 분배 차원을 넘어서 선진국형의 자체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으로 한걸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5일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한국교회는 올해부터 자체 지원프로그램에 따라 집중 지원 지역을 선정해 본격적인 지원사업을 펼친다. 우선 첫 집중 지원 지역으로 방글라데시를 선정하고 올해 해외원조 예산의 10%를 단위 사업 프로젝트에 집중 투입,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또 올해에는 가난한 가정의 지킴이 역할을 해온 빈민 지역 가톨릭 공부방들의 전국 조직 결성이 가시화될 예정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가톨릭공부방협의회를 비롯해 광주, 마산, 대구 등지에서 활동 중인 지역별 공부방협의회는 심각해지는 가정 문제와 아동 문제 등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올해 안으로 「전국 가톨릭공부방협의회」를 발족시키기로 하고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도
시성 20주년 맞아 순교신심 재조명
올해는 한국교회 103위 성인이 시성된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교회 신앙의 선조들이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했던 선조들을 시성함으로써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서 그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후 한국교회에서는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노력이 있었고 제2의 시복시성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순교신심을 실천했는지에 대해서 많은 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시성 2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순교신심을 재조명하고 신자들이 이러한 신심을 수용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다양한 형태의 심포지엄이나 기념행사들이 마련될 예정이다.
아울러 같은 해 열린 한국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역시 20주년을 맞는다. 교황이 함께 한 가운데 개막된 사목회의와 그 성과인 사목회의 의안들은 미래를 전망하는 예언적인 내용들을 담은 훌륭한 문헌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사실 한국 교회의 사목에 얼마나 충실하게 적용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20주년을 맞은 사목회의의 가치와 중요성, 그리고 의안이 오늘날에 갖는 의미 등에 대해 재조명하고 성찰하는 기회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