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한국 사회와 교회가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생명과 가정의 가치가 퇴색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올해에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이 배가될 것으로 보이며, 특별히 「아시아에서의 가정」을 주제로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총회는 그러한 노력을 더욱 지원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위기로 의식하고 있는 냉담자 문제, 예비신자 감소,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충실도의 저하, 나아가 종교다원주의와 신영성운동의 확산 등은 보다 근본적인 신앙의 쇄신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제반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는 주교단을 중심으로 전국 각 교구가 긴밀한 협력과 연대 속에서 시대적인 요청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사목적인 방안들을 차근차근 모색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올해 한국 교회를 이끌고 나아갈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로부터 한국교회의 올 한해 활동 방향과 당면 과제들을 들어본다.
▲ 지난해 주교회의 차원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역시 가정과 생명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올해에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총회가 가정을 주제로 한국에서 열립니다.
- 사회의 기초 조직이며 생명의 요람인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율의 증가가 큰 문제로 지적되지만 이미 30년전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모자 보건법」이라는 악법이 제정됐고 그 결과로 수많은 낙태가 자행되어왔습니다. 이번 FABC 총회의 주제와 개최지는 4년 전에 이미 한국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개최지인 한국교회는 사목적으로 중대한 문제인 가정에 대해 다루고 시대에 맞는 복음적 요청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모든 참석자들을 뒷바라지할 것입니다. 한국 주교회의는 올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가정에 대한 주교단 공동 사목교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가정 문제에 대한 각 교구의 사목적 대처, FABC 총회의 결과 등을 종합해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들을 전하고, 사회를 향해 가정의 소중함을 선언한다는 의미로 교서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 올해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가 개최된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라고 할 때, 그런 의미에서는 변화가 없지요. 하지만 신비체를 구성하는 신앙인들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때 사목회의가 다룬 주제들이 지금도 동일하다고 해서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정치, 경제와 사회상들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그때는 이른바 후기산업사회였고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목회의 20주년을 맞은 오늘날 새로운 언어로 새 시대적인 요청에 대답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의회는 언제나 이전 공의회의 성찰을 기본적으로 연구합니다. 마찬가지로 20년 전의 사목회의의 성과는 항상 반추되게 마련입니다. 교회는 전통 안에서 전통을 통해 응답을 찾기 때문입니다. 20년전 과는 새로운 상황이 있습니다. 물론 항상 시대에 따라 새로운 과제들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사목적 대처 방안들은 오늘날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 현재 한국교회에는 7개의 신학교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신학교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신학교 수가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트리엔트공의회에서는 각 교구마다 신학교를 운영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사제 양성은 주교회의와 교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50년 전에는 신학교가 하나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성장하고 사제 성소가 늘어남에 따라서 신학교 설립이 요청됐습니다. 15개 교구에 400만명이 넘는 신자, 신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한 곳에서 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따라서 신학교가 많다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교육의 질적인 면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예컨대 적절한 교수진 확보 등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신학교 수가 많아지면서 교수 양성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결국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성소자나 신학교 수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교회에 주어진 축복이라는 면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7개 신학교들간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서 보완하고 신학교 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꾀하는 노력은 필요하겠지요.
▲ 교구간 벽이 높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구간 사제 교류, 재정 지원 및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교구간에 교류가 없다는 지적은 부분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교회의를 중심으로 각 단위와 수준별 교류가 예전에 비해 매우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교구들이 다른 교구를 지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또 실제로 어떤 교구가 사제를 절실히 필요하게되면 도와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교류들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교회와의 교류도 전에 비해 매우 많아졌습니다. 예컨대 일본과의 주교 교류 모임이 올해 9회를 맞았습니다. 결론적으로 교구간의 교류가 현재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교류들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발전적인 협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각종 통계나 지표들을 통해 볼 때 한국교회의 미래와 관련해 여러 가지 우려가 있습니다. 신영세자, 주일미사 참례자 감소와 쉬는 신자의 점증은 어느 한 교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리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서구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쇠퇴하는 것은 그들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인간성, 시대성, 나약성 등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하느님 백성이 행복하면 하느님을 잊고 산다는 것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신자가 소수이고 소그룹일 때에는 친교가 잘 이뤄지지만 성장하고 사람이 많아지면 친교의 정신이 옅어지게 마련입니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죠.
그 때문에 새 복음화, 소공동체의 필요성이 절실해집니다. 사회가 변화됨에 따라서 과거의 신앙 형태로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지금은 과거의 신앙 행태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심운동, 사도직 단체의 활성화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꾸준하게 현대인들의 신심, 성격, 생활에 맞는 신심 운동이나 사도직활동을 개발하고 교회의 선교 전략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냉담자 문제 역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 극복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신앙을 점검하고 쇄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극복이 가능합니다.
▲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의 유혹, 신영성운동의 확산 등에 맞서서 「신앙생활의 기본에 충실함」이 어느때보다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기본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요?
-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황 성하께서 지난해에 반포한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는 바로 그 핵심을 가르칩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묘사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총체적인 회개는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함께 모여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빵을 나누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 생활이며 신앙의 신비입니다. 주일미사는 의무이며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체 후 세상으로 파견됩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듯이 그 그리스도를 지닌 우리는 영성체와 함께 세상을 구세사로 바꿀 사명을 지니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성체로써 공동체가 형성되고 양육되며 파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사람들을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느님께 나아가는 마음은 곧 이웃에게 다가가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을 존경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닮은 인간을 존경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 대주교님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재임 당시 민족화해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족화해학교를 개설하는 등 교회내 남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다지는데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또 98년 한국교회 고위 성직자로선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셨습니다.
- 관심은 줄지 않았지만 방법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방북이 불과 5년 전 일이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수월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도도히 흐르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초면과 구면은 다릅니다. 북한으로의 길은 이제 먼 길은 아닙니다. 당시 중국 심양에서 북한에 들어가는 「사증」을 받을 때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때 북한 영사가 우리를 안심시키며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북한에 우리가 누리는 그런 자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우리 자유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손잡고 함께 가야 합니다.
민족의 동질성을 저해하는 장애를 제거해야 합니다. 「힘」과 「이념」이 개입된 「통일」이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 정신을 근간으로 그리스도 안에 화해를 이뤄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임을 깨우치기 위해서 기도를 바치고, 두 번째, 대결의 원리가 아니라 중도 입장에서 분단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 58장에서 말하듯 나눔의 실천 없이 허례허식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신 야훼의 말씀처럼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민족화해의 과업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우리 잘못을 하느님이 용서했듯이 용서하고 용서받는 자세, 손을 먼저 내미는 자세로 앞장서서 선도해야 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신자들에게 새해 덕담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역설적이지만 『잘 살기 어렵기 때문에 잘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2000년 대희년 때 한국 교회는 「새날 새삶」 운동을 통해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새롭게 변화될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연 「참된 삶」을 사는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부터 새롭게 되고 가족과 이웃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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