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행된 남북 장성급 회담의 합의 내용이나 우리 민족 대회를 보면 우리의 남북 관계가 불과 10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금강산을 다녀오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고, 평양을 다녀온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씩 TV에 방영되던 이산가족 상봉도 더 이상 뉴스의 중심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북핵 문제로 인한 남, 북 간의 긴장은 여전하지만 어떻든 개발 독재의 시대, 북한 하면 빨갱이요, 빨갱이하면 머리에 뿔 달린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던 반공 교육의 관점에서는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지난 김대중 정권이 시도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햇볕 정책의 결과입니다. 물론 그 당시 많은 이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퍼주기』니 뭐니 하는 식으로 매도하기도 했습니다만 일시적인 손익을 따지지 않았던 용기, 그리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기보다는 먼저 용서하고 포용하려는 의지적인 일관된 정책이 이러한 오늘의 관계 개선에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공동체 설교의 일부로써 「공동 기도와」 「끝없는 용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구하면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모아 구한다』. 여기서 마음이란 인간의 정신생활 전반을 나타내는 말로 인간의 감정, 기억, 이념, 계획, 지식, 결정 등이 포함되는 말입니다. 때문에 마음을 모은다는 말은 단순히 같은 내용을 기도드리는 합송의 의미를 뛰어 넘는 온전한 일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공동기도의 장점은 혼자 드리는 기도보다 이기심을 줄이고 대신 이웃사랑과 공동선을 청할 수 있기 때문인데, 어떻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공동의 가치를 위해 우리가 함께 기도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을 공동체의 규범으로써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의 문제.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합니다. 물론 490번 용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일곱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이기에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합니다만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힘들고, 그리고 또 용서의 어려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용서라는 말의 의미를 관대하게 해석한다 해도 여전히 용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 더 솔직한 표현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영원한 숙제가 바로 용서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이 말씀을 어렵다고 무시해야만 하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 드릴 수밖에 없는데 저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 청함」과 「용서 받은 경험」이 그것의 해답입니다. 저는 지금 약 30명의 직원들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가끔씩 직원들이 잘못한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잘못이라 하더라도 용서청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 그 일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틀려집니다. 잘못한 사람이 먼저 잘못을 용서청할 때는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생깁니다. 물론 용서해 준 이후에도 찌꺼기가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용서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용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인 경우는 솔직히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는 과거 나의 실수에 눈감아 주고 용서해준 사람일 경우입니다. 비록 나에게 한 짓들이 밉고, 또 용서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고 힘들다 하더라도 과거 나를 용서해 준 경험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는 현재의 힘든 마음과 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의지적인 용서를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경우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 개인적인 경우로 보면 「용서 청함」이 「용서」를 낳고, 「용서」가 또 다른 용서를 가져오기에 용서하기가 힘들다면 내가 잘못했을 때 먼저 용서 청할 수 있는 자세만이라도 가지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각 성당에서 봉헌합니다. 남북의 정책 담당자들과 우리 민족들이 오늘 복음 말씀처럼 진정 온 마음과 뜻을 모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고 또 서로 용서할 수 있을 때 화해와 일치의 선물이 우리 민족에게 함께 하게 되리라 여겨지며, 또 이러한 삶의 자세는 남북의 관계 뿐 아니라 교구로 갈라진 우리 한국 교회, 더 나아가 지역으로 분리된 우리 사회 안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내가 용서 청해야 할 잘못의 목록을 생각해 보는 한주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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