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면서 만나게되는 불가해(不可解) 중에, 그런게 있다. 이미 환멸과 증오를 충분히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멀어지지 못하는 것, 그리하여 여전한 환멸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그냥 그 자리에 있고자 하는 것, 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욥은 이미 하느님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을 느끼고 그 만큼 절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에게 고통을 전가한, 그래서 이미 등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 관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에게 손을 내미는 이중의 모순적 상황을 본론의 마지막 부분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욥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고통의 원인이며 동시에 구원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욥기가 제시하는 드라마틱한 삶의 메시지이며 또한 불가해한 하느님 이해(神觀)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등장(38~42, 6)
「하느님의 등장」(38, 1~42, 6) 부분은 본론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것으로, 지금까지 전개된 논의의 절정을 이루며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주님의 첫째 말씀과 욥의 답변(38, 1~40, 5)
2) 주님의 둘째 말씀과 욥의 답변(40, 6~42, 6).
즉, 이 부분 역시 매우 체계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하느님의 연설(A) -> 욥의 답변(B) -> 하느님의 연설(A') -> 욥의 답변(B')의 순서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하느님의 연설(38, 1~40, 2)
드디어 등장하신 하느님은 욥의 고통에 대해 속시원한 이유를 제시하는 대신,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만을 밝히신다. 『누가 땅에 주춧돌을 놓았느냐?』, 『누가 문을 닫아 바닷물을 가두었느냐?』등 38장부터 40장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그러므로 인간은 주인이신 하느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인간 본연의 한계상황을 상기시키고 있다. 결국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므로 세상은 그분의 시각에 의해 조성되고 운영되는데, 욥의 문제는 자신의 경험 중심으로, 즉 자기 중심적 시각으로 이 모든 이치를 이해하려 했기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저자는 세상을 인간 중심적 시각으로 보려는 태도를 비판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의 해체」를 시도하고, 역사와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그 주인이신 하느님이심을, 즉 「신중심주의」적 시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시선과 판단을 기준으로 전체를 보려고 할 때, 인간은 억울하고 불만스런 현실만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세상!」, 이라는 표현은 또 하나의 절대 진리이다.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세상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기 때문이다.
욥의 답변(40, 3~5)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시선만으로 세상을 보려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깨달음을 통해 이제 욥은 말하기를 포기한다. 『저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손으로 입을 막을 뿐입니다』(40, 4~5).
지금까지 무수히 발설해온 변론을 그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각, 의지를 포기한다는 것이요 동시에 자기 생각과 이론만에 갇혀, 더 큰 조화와 질서를 보지 못해왔음에 대한 각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욥은 내면적 침묵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성탄과 새해
지난 대림절, 내 손으로는 처음으로 트리를 꾸미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짝이 전구, 작은 방울, 리본 모두 각각 예쁘지만,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적절한 자리에 배치될 때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전체의 조화를 위해서 작은 방울은 반드시 그 자리에 배치될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왜 이 처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깨달은 자라면 욥처럼 항변을 철회하고 수용과 침묵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진지한 자기 표현일 수 있다. 가난하게 태어나신 아가 예수님의 고요와 침묵, 그리고 그 침묵으로 인한 조용한 평화가 새해에는 모든이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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