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운이 전반적으로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치와 경제가 혼란스럽고 어려움을 겪으며 변화가 심하겠지만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면 국운이 융성해질 것입니다』
일견 장엄하고 비장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말들은 무슨 국가 원로나 정치, 경제 전문가들의 발언이 아니다. 새해에 접어들 때마다 유명 역술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점치며 새해 운세를 피력하곤 한다. 그리고 많은 언론사들은 이런 역술인들의 말을 빌어 우리 사회의 희망을 전하곤 한다.
전에는 가십성 기사를 취급하는 「특수지」 또는 스포츠신문들의 전유물이었던 이런 예언들이 이제는 유수의 언론들에서도 일반화돼있고 독자들 역시 이러한 현상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얼핏 보면 그야말로 민족과 국가, 개개 국민들의 운명이 이런 역술인들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까지 불러온다. 하지만 역술에 바탕을 둔 미래 예측과 운세를 보는 일은 신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 안에서 점술과 역술은 매우 폭넓게 확산돼 있고 부분적으로는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실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스포츠신문들이다. 모든 스포츠신문들이 예외없이 사주, 점술, 역술 등에 대한 고정 코너를 두고 있으면서 띠에 따라서,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크고 작은 예측과 예언들을 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 어떤 스포츠지에서는 역술인들을 대상으로 자동응답시스템을 갖춰 서비스하는 것을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역술, 점술 광고를 무분별하게 싣는 것은 이미 다반사다. 최근 개신교계통의 한국교회언론회가 지난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중앙일간지의 역술, 점술 광고 게재 실태 조사를 한 결과 47회에서 186회까지의 광고를 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교회언론회는 이같은 광고 게재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으나 상당한 광고 수입원이 되는 이유로 큰 성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실태는 우리 사회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역학이나 점술 등이 안고 있는 미신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우리 사회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그런 행위들이 젊은이들에게까지 매우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가 이른바 사주카페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행한 사주카페는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신세대의 특성에 미래를 점칠 수 없는 불안한 사회 현실이 합쳐져서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N세대로서 젊은이들이 역학, 점에 매료된 것은 인터넷을 봐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검색사이트를 보면 역학, 철학관 등으로 분류되는 사이트들이 수백 수천개이다. 네이버에는 역학.철학관 카테고리에 600개가 넘고 엠파스에는 「역학」이 33개, 「운세.사주」가 500개에 달한다. 야후에서도 관련 사이트가 수백개이다.
이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역학, 점술의 유행 외에도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의 민간 신앙의 한 형태로 내려오고 있는 점집들은 지금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집안 일이나 사업 등 대소사를 앞두고 점을 보는 것은 일종의 통과 의례처럼 돼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과 양쪽 집안에서 궁합을 보는 것도 상례화돼있다.
그러면 이렇게 점이나 역술에 관심과 흥미를 갖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가톨릭신자가 점을 보거나 역학에 따른 운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신앙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한마디로 교회에서는 이처럼 점을 보거나 궁합을 맞춰보는 행위 등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미신이든 그것이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의 자세를 훼손하고 더욱이 점술의 형태가 강신술이나 악령에 의한 마술과 같은 성격을 의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대죄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심심풀이」로 점을 보거나 운세를 본다고 할 때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선 사목자들의 권고이다. 말그대로 한번 웃고 마는 기분으로 새해 운수를 보거나 점을 보는 행위들 역시 자칫 신앙의 기본 자세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점을 보거나 사주풀이를 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 자체도 그것이 지닌 윤리적, 신앙적인 판단에 있어서 중요하지만 그러한 행위 뒤에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태도도 신중하게 점검해봐야 한다.
즉 미래의 길흉에 대한 어떤 답을 들었을때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현실 생활에서 요구되는 건전한 생활이나 올바른 신앙 자세에 소홀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이라는 것이다. 일부 사이비 역술인들이 부모나 자녀가 흉한 일을 겪게 된다는 등 위협으로 사기 행각을 일삼는 것도 이러한 자세와 연관된다.
심각한 문제는 실제로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 점집을 찾거나 운세, 역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수 년전의 통계이지만 가톨릭신문이 지난 1998년 실시한 신자의식 조사를 보면 97%가 민간 신앙을 접한 적이 있고 10명 중 3명은 토정비결.사주.관상.점 등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선 사목자들은 점을 보거나 사주풀이를 하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죄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 자체가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칠 가능성이 농후하고 하느님 이외의 것에 호기심과 가치를 두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점이나 운세를 보는 행위가, 자녀의 입시나 부모의 사업 등 개인이나 가정의 현세적인 이익의 추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을 경우 극도의 기복적인 요소가 개입되게 되고 그런 자세와 행위는 결국 올바른 신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점이나 운세를 보는 행위에는 극도의 기복적인 요소가 개입되게 되고 그런 자세와 행위는 결국 올바른 신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사주 카페, 재미로 보지만…
단순 흥미거리에서 점차 중독으로
‘3회 보면 1회 무료’ 등 상술에 현혹
90년대 중반부터 서울 이대 앞, 신촌, 압구정 일대 유흥가와 지방 대도시 번화가에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사주카페. 아예 전문상가가 생겨날 정도로 숫자는 일반화돼 있다. 자연스럽게 번화가를 찾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고 이전에는 중장년층에 국한됐던 사주팔자나 궁합이 터부시된 미신에서 흥미와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홍대 앞 한 사주카페를 찾았다. 입구에는 「백발백중 사주카페」라는 입간판과 사주를 봐주는 역술인의 사진과 약력이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이른 시간임에도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역술인 세 명이 번갈아 사주를 보는데도 일손이 딸리는 듯 보인다. 이곳은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용한 역술인이 있다는 카페다.
한 아르바이트생은 『방학이나 학기 중 또는 요즘처럼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에는 하루에 100여명이 넘는 손님이 사주를 보기 위해 찾아 온다』며 『대부분은 대학생이거나 직장에 갓 들어간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상담 시간은 대략 20여분. 보통 만원에서 비싸게는 3만원까지 하는 특별사주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주카페를 찾는다는 김모(23)양은 『전적으로 믿진 않지만 그냥 재미 삼아 사주를 보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다』며 『오늘은 내년에 계획 중인 유학을 어디로 갈지, 또 얼마나 갈지 알아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사주를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차 한 잔 마시며 운세도 보고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참고를 하기 위해 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재미나 흥미 수준을 넘어 중독에 빠진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평균 세 번 정도 사주를 보러 온다는 하모(21)양은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 와서 옆에서 들으며 「뭐 저런 걸 저렇게 유심하게 듣나」했는데 한 번 사주를 보고 나니 계속 오게 된다』며 『이제는 사주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주카페의 상술도 이러한 사주중독을 부추긴다. 회원제를 운영하며 3회 사주를 보면 궁합이나 인생운을 1회 공짜로 봐 주거나, 애프터서비스(A/S) 제도를 통해 나날이 바뀌는 사주를 사후에도 또 봐주는 카페도 생겨났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카페에 상주하며 사주를 봐주는 한 역술인은 『사주카페가 처음 생겼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요즘도 사주를 보러오는 사람은 매우 꾸준하다』며 『특히 연말에는 대학생 등 젊은이들 뿐 아니라 자식운이나 재물운 등을 보러 오는 중장년층 주부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 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