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세례 받을 때는 성체를 영할 때 혀 위에 올려놓고 녹여서 영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르시더라구요. 성체를 씹어서 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겁니까?』
어느 교우분이 차안에서 이런 물음을 하셨다. 순간 머리 속이 긴장감 있게 돌아가면서 적절한 답을 찾아내느라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됨을 느낀다.
『성체를 혀로 영하는 것은 성체공경에 대한 신심이 강조된 행위이고, 씹어서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가 강조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횡설수설 할 뻔했지만 다행이 정리되어 답할 수 있었다. 별로 의문시하지 않았던 것인데, 헷갈리는 이렇게 헷갈리는 문제인 것이다.
이렇듯 평소 궁금한 것이 많은 「의식(?)」 있는 신자들 때문에 긴장할 때가 많다. 시대의 특징과 요청에 따라 특별히 강조되는 신심행위들과 신학적 동향들이 있는데, 이를 생각하며 속으로 푸념하곤 한다. 「아, 신학생 때 열심히 공부 좀 할 것을…」. 턱걸이 인생이 마구 후회된다.
신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해가 갈수록 느끼는 것은, 나의 부족함이 더욱 잘 보인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과 역량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세상은 쉽게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라서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정의로움과 사랑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펼칠 것인가」도 고민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부분의 갈등에서는 각자의 논리로 서로를 반박하는데 정보의 폐쇄성과 매스컴의 제한된 보도를 가지고는 올바른 판단이 힘들다. 그래서 괜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기도 하고, 강자의 논리에 스스로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다혈질적인 성급한 마음, 얇은 귀, 통제가 어려운 혀까지 가지고 있으니 설상가상인 형국이다. 그러나 실상 더욱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내외적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려는 본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겸손함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 혼란에 대한 한탄과 내가 지니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보다 역사의 주인이신 분에게 눈길을 돌리는 일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그분이 쥐고 계신다. 모든 부족함을 채워 당신의 능력을 보이실 분 역시 그분이시다. 그러니 새해를 시작하며 모든 걱정근심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수난을 앞두셨던 그분의 말씀을 떠올려 보자.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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