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4년간 정부 관련 부서와 전문가들,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 국민적인 논의 끝에 나온 최초의 생명윤리 관련 법안이다. 하지만 과연 이 법안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생명의 존엄성 훼손 문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그 문제점과 과제를 알아본다.
의미
이번 법률안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첨단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해 야기되는 다양한 생명윤리 관련 사안들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첫 법률안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생명과학 수준은 세계적이다. 이는 「바이오테크」에 매료된 국가 산업정책 입안 부서와 생명산업계, 일부 생명과학자들로부터 생명과학을 단지 「미래산업」으로써만 간주하도록 하는 오류를 가져왔다. 또 관련 연구와 실험들이 무분별하게 이뤄졌고, 적절한 규제 법안도, 규제 시스템도 확립돼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는 생명윤리법안의 조속한 제정을 끊임없이 주장해왔고 그에 따라 지난 2000년 1월 관련법 제정이 공표됐고 격렬한 논쟁이 4년여 동안 이어졌던 것이다.
법안은 향후 이어질 생명윤리 관련 사안들을 결정하고 시행하는데 있어서 토대가 되는 기본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법안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더욱 심각한 것이다.
물론 법안이 지닌 긍정적인 면도 전혀 없지는 않다. 그동안 관리 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생명과학 연구와 임상 분야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야말로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인간 개체 복제에 대해서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 시급성에 비추어 당연한 일이며 전혀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던 인간 배아의 생성에 대한 관리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또 관련 기관들이 의무적으로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나 유전정보를 이용한 차별 금지,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 규제도 의미가 있다.
핵심 쟁점과 문제점
하지만 이번 법안은 근본적으로 「생명윤리법」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하며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짙다. 즉 인간 배아 복제, 이종간 교잡 등의 행위를 허용함에 따라서 반생명적 행위를 공공연하게 인정, 생명윤리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후퇴시킬 악법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법안은 인간 배아 복제를 전면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오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제11조에서 개체 복제, 즉 생식 복제에 대해서는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반면 법안은 희귀,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을 위해서는 체세포핵이식을 통한 배아 복제를 허용하고 있다(제22조). 그리고 그 연구의 종류와 대상 및 범위를 심의위원회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위원회에서 허용하면 얼마든지 체세포복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또 임신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는 행위를 허용하면서 그 과정에서 이용되고 남는 배아, 즉 「잔여배아」는 5년이 지난 경우 폐기하거나 각종 연구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제16조 및 17조).
이러한 규정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근본적이고 심각한 것들이다. 먼저 배아의 지위와 관련된 것으로 인간 배아를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세포덩어리로 간주하는 인식의 문제이다. 배아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을 지닌 생명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배아 연구와 실험은 필연적으로 배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이는 살인 행위이다.
아울러 법안이 생식 복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연구용 복제를 허용함에 따라서 결국은 인간 개체 복제의 시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모든 형태의 인간 배아 복제를 완전히 금지할 때 생식 복제를 금지하려는 목적도 달성될 수 있다.
법안에 대한 시민단체들과 종교계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윤리적인 시각보다는 미래 산업으로서의 측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고려를 최소화하면서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반발을 회피하려는 저의가 법안에 담겨 있다.
그러한 의도가 두드러지는 부분이 바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구성이다. 법안은 제7조에서 심의위원회를 16인 이상 21인 이하로 구성하되 7개 부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두고 있다. 여기에 생명과학, 의과학 분야 7명 이내, 시민단체와 종교계, 여성계 등에서 7인 이내를 위원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매우 폭넓은 심의 권한을 지닌다. 배아복제연구, 이종간 교잡 허용 여부 등 법안에 명확히 규정돼 있어야 할 핵심적 사안들에 대한 결정까지도 위원회의 심의대상으로 떠넘겨져 있다.
위원회 구성에서 정부 고위 관리와 생명과학계가 3분의 2를 차지함으로써 향후 생명 윤리와 관련한 첨예한 갈등이 빚어질 경우 위원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구성을 규정한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제
교회는 법안에 대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법이 시행되더라도 생명윤리를 위한 입법이라는 올바른 취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비록 미흡한 법안이지만 그나마 의미 있는 규정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실시될 수 있도록 감시역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인간 배아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도록 끊임없이 법안 개정을 요구하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 실제적인 법 개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핵심은 배아를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치료 및 연구용 배아 복제를 포함해 어떤 형태의 인간 배아 복제도 전면 금지하는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서 생성된 모든 배아의 현황, 배아의 유지 관리 폐기 등 전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국가가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내 인간 배아 수에 대해 일각에서는 거의 1백만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관리는 고사하고 실태조차 전혀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톨릭 교회 전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철저히 인식하고 교회 전체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타 시민단체, 종교계와 긴밀한 연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론적인 차원의 교회 가르침만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는 생명과학, 산업계의 전방위 로비와 압력, 그에 부응하는 잘못된 국가 정책 방향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의 연대와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법률안의 주요 내용
인간복제.이종간 착상 금지 등은
공포와 함께 실시…나머진 내년에
국가 및 기관생명윤리위 설치키로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 정식으로 시행되는 것은 1년 뒤인 2005년 1월 1일부터이다. 다만 제11조 인간 복제의 금지와 제12조 이종간의 착상 등 금지 등은 공포와 함께 실시된다.
국회 본회의 전 법사위에 올라온 법안은 모두 4건, 여기에 2건의 청원을 더해 모두 6가지의 생명윤리 관련 안건이 제출됐다. 4건의 법안 중에는 천주교측에서 마련한 법률안을 바탕으로 김덕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포함돼 있었다.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이 법률안과 청원에 대해 심사한 뒤 단일안을 마련했고 제244회 국회 제1차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소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바탕으로 심사한 결과 4건의 법률안 및 2건의 청원을 통합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을 대안으로 제안하고 나머지는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 단일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통과된 법률안은 9개장 55개조의 법률안과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법률안 중에서 중요한 규정들은 다음과 같다.
- 대통령 소속하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배아연구기관, 유전자 은행, 유전자 치료 기관 등에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둔다(제6조, 10조).
- 인간 복제를 위해 체세포 복제 배아를 자궁에 착상, 유지 또는 출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제11조).
- 임신 외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거나, 특정의 성을 선택할 목적으로 정자와 난자를 선별 수정시키거나, 사망자 또는 미성년자의 정자와 난자로 수정시키는 행위 및 매매 목적으로 정자, 난자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제13조).
- 잔여배아를 불임치료법 및 피임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또는 희귀,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제17조).
- 질병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 외에는 체세포 핵이식행위를 금지하며, 체세포핵이식 행위를 이용할 수 있는 연구의 종류, 대상 및 범위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제22조).
법률안은 그 외에 유전 정보를 통한 차별과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를 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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