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되돌아보며 늘 놀랍게만 다가오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때마다 경외감과 감사의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이립(而立)의 나이가 가까워서 나는 또 한번 부족하기만 한 당신 종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대하게 된다. 필봉으로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는 뜻이었을까, 정말 뜻하지 않게 언론의 길로 불러주신 것이다. 그러나 말이 우연이지 지나고 보니 하느님의 안배하심과 필연을 느끼게 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당시 주위 동료를 비롯한 일반 기자들의 생활은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들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경우는 15년이 넘게 한 직장에서 기자생활을 했음에도 이 일에서 손을 놓을 때까지 셋방을 전전해야 했다. 다 내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돌이켜 보면 오히려 가난의 길을 걸으며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새롭게 눈을 뜨라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그 때 체득한 가난함의 영성이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가장 큰 자산이 되었던 것 같다.
기자 시절을 통틀어 대부분의 시기를 지금의 행정자치부인 내무부를 출입했는데 당시 내게는 「이사장」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녔다. 사장의 풍모도 아닌 내게 그런 별칭을 붙여준 것은 아마 주위에 늘 사람이 꾀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기자로 살며 한 가지 동료들에게 융화되지 못한 면이 있다면 술과 담배 문제라 할 수 있다. 술 담배로 스스로 망가져 가는 모습을 적잖이 지켜본 나는 이런 생활에 만족하다가는 자멸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날로 술 담배를 끊어 지금까지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사장님은 주위에서 시샘할 정도로 나를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그런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예, 아니오』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윗사람들에게 「예스맨」으로 남을 때 나는 안될 일은 안 된다고 분명히 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이지만 당돌하게까지 비쳤을 내 모습을 감싸안아 준 이들이 주위에 많았던 것도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13년간 내무부를 출입하는 기자단의 심부름꾼(단장)으로 활동하며 얻었던 그 때의 다양한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음을 돌이켜 볼 땐 하느님의 안배하심이 놀랍고 또 놀라울 뿐이다.
1970년 내 나이 마흔넷에 언론사의 꽃이라는 편집국장의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 직위에 이르게 되기까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자는 남을 등쳐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딴에는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기자사회를 향한 주위의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땐 함께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편집국장이 된 지 1년이 되는 날 무슨 일이 있어도 기자의 길을 접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드디어 꼭 1년이 되던 1971년 봄,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편집국장직을 내던졌다. 변변한 집 한채 마련하지 못하고 한창 기세를 올릴 위치에서 물러나는 나를 두고 주위에서는 별의별 추측과 염려가 난무했음은 짐작할 만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것도 하느님의 이끄심이 아니었나 싶을 뿐이다.
비록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가끔씩 언론사도직에 종사하는 후배 기자들의 모습을 볼 때면 과거의 내 모습들이 투영되는 것 같아 회상에 젖을 때가 적지 않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주님이 바라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얼마나 붓을 다듬었던가.
과거에 비해 나은 여건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필봉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땐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부족한 사람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한 마디를 전하자면 늘 하느님과 가까이 지내라는 것이다. 전능하신 그 분과 가까이 할 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겸손해지는 게 하나의 이득이고 나아가 주님께서 그 부족함을 채워주심이 더 큰 이익이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가며 새롭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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