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삶을 접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면서 거듭나는 생활을 다짐하는 설날이 다가왔다. 설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부모와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풍습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전통제사에 녹아있는 유교사상에서는 효를 모든 덕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이 효의 정신은 가장 귀중한 생명과 지극한 사랑과 은혜를 조건없이 주신 생명의 근원인 부모와 선조께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데 있다. 이런 정신을 담고 있는 전통이라 할 전례의 제사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제사인 미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 한다」(중용 19장)는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전통제사는 생명의 근본에 보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효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사의 근본의미는 복을 구하기 위함이나 다른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서 생명의 근본인 선조에게 보은의 효를 계속 실천하는데 있다.
한국교회 제례문화의 기원은 조상제사 금지로 박해를 받았던 교회 창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0년 윤유일(바오로)을 통해 조선에 전해진 북경 구베아 주교의 조상제사 금지명령에 따라 신자들은 제사를 올리는 대신 부활신앙 안에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보편교회는 제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례를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신자들은 죽음을 거쳐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파스카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며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신자들은 기도와 전구로써 통공하며 영육간에 서로 도와주고 위로하는 것이다.
교회는 죽은 이에 대한 그 시대와 지역의 정신과 풍습을 무시하지 않으며 좋은 점이 있다면 다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복음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바꿔 복음정신과 파스카 신비가 잘 드러나도록 이끌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제사에서 중요한 것도 바로 이점이다. 교회는 모든 단계의 예식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봉독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가르친다. 이는 곧 말씀을 통해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고 신자들에게 하느님나라에서 다시 모이라는 희망을 북돋워주며, 나아가 삶으로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3년 4월 발표한 새 회칙 「교회와 성체」(Ecclesia de Eucharistia)도 이 점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보편교회의 제사는 물론 전통제사를 통해서도 신자들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흠숭의 마음을 지니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새로운 힘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몫을 다해 나가겠다는 다짐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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