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선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고 계셔 용기가 솟는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영등포역에서 열차에 치일 뻔한 어린이를 구하고 대신 철로에 떨어져 발목이 잘리는 중상을 입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43)씨는 놀라울 정도로 의연한 모습이었다.
5개월이 넘는 투병 기간동안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큰 수술만 일곱 번에다 그의 말로 피부를 이식하는 등의 간단한(?) 수술은 두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술과 회복, 또 수술로 이어지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김씨는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전했다.
『이 정도면 다행이죠. 과분한 격려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온한 웃음을 잃지 않는 김씨의 「성한」 정신과는 달리 몸은 안쓰러울 정도로 피폐해 있었다. 무릎 아래로는 10cm 남짓만 남은 왼쪽 다리에다, 보통 어른의 3배는 족히 넘어 보일 정도로 퉁퉁 부은 채 붕대에 칭칭 감겨 있는 오른쪽 다리, 피부이식수술로 떨어져 나간 손바닥만한 살점자국이 군데군데 선명한 허벅지 등은 험난한 그의 투병생활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듯했다.
13시간에 걸쳐 뭉개진 발등에 종아리 살을 떼다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은 후에는 일주일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진통제도 2시간 이상 효과가 없을 정도로 고통이 격심했던 것이다. 오른쪽 다리보다 10cm나 짧은 왼쪽 다리도 연장 수술을 고려했으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최소 2년은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지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의족을 착용할 수 있도록 절단했다.
『다리는 잃었지만 더 큰 사랑을 얻었다』는 그에게는 담담하게 자신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는 가족들과 격려의 글을 보내온 이름 모를 수많은 이웃들의 존재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전남 나주의 금천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성탄카드와 함께 고사리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보내오는가 하면 멀리 여수에서 손수 갓김치를 담가 오는 이도 있었다. 또 휠체어를 탄 몸으로 자신을 찾아와 재활 경험담을 들려주는 장애인의 배려 등 병상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체험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왼쪽 다리는 참 마음에 들어요. 수술이 잘 돼 행복하죠. 오른쪽 다리만 빨리 아물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상처가 아문 왼쪽 다리를 내보이기까지 하는 김씨는 요즘 병상에서 교리공부에 푹 빠져있다. 지난 9월초 병원으로 자신을 찾아온 이기헌 주교 등 주교회의 「생명31운동」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신앙생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던 그가 스스로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신자인 부모님이 보시는 성서를 가져다 짬나는 대로 보는가 하면 교회와 관련된 여러 종류의 책도 읽고 있다.
『아직은 너무 부족합니다. 지금에서야 이 길을 찾게 된 것도 무슨 뜻이 있겠지요』 이런 그의 선택을 어떻게 알았을까. 낯도 모르는 다른 병실의 신자들이 그의 얘기를 듣고 찾아와 교리서적이며 묵주 등 성물을 전하고 가는 것은 물론 신앙상담도 해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병상을 지키고 있는 아내 배해순(40)씨와 틈틈이 듣고 있는 피정 테이프와 강론집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렇게 교리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고통도 지워지는 듯하다.
『동료들에게 누를 안 끼칠 정도로 회복되면 원래 삶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3, 4월경 퇴원하고 나면 재활치료를 거쳐 하루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김씨는 본격적인 교리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모든 여행자들의 수호자인 라파엘 대천사와 스테파노 성인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그에게서는 늦깎이 예비신자로서의 남다른 열정이 전해져 오기도 했다.
『멀기만 한 길을 돌아 새로운 출발선에 선 느낌입니다. 그동안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께 변변한 인사도 못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삶을 통해 사랑을 기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과의 새로운 교제를 시작하고 있는 그의 풋풋한 모습에 두 손이 모아졌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