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박식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재능 있고 말 잘하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도 참 많다. 그러나 사실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옳고 정의로운 것을 위해 실천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에게 재산이 많아지면 당연히 나누어 줄 것 같지만 그것을 지키고 불리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지식이 많아지면 올바른 판단으로부터 나오는 실천에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변적인 지식의 유흥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데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명예가 쌓이면 덕이 함께 쌓여갈 것 같지만 품위 유지를 위한 생색내기나 책임 회피의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지식이나 돈이나 명예가 모자라서라기보다는 실천이 부족해서라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12월 직장사목부 설립 10주년 기념 미사 때 선배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바닷물의 염분이 몇%인가. 3%이다. 3%의 소금으로 바닷물이 짠맛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아니 우리 신자들 중의 일부만이라도 복음의 가치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은 변할 것이다. 직장이 변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브라함이 야훼께 빌면서 여쭈었던 일이 생각났다 부패와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던 야훼께 끈질기게 매달려, 의인이 열 사람만 있어도 그 도시를 멸하지 않을 거라는 확답을 받는다. 도시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 중 열 명이라. 그렇다면 이 세상이 그나마 계속해서 굴러갈 수 있기 위해 세상을 요동칠 큰 혁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닐 것 같다. 그저 복음의 가치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우리 신앙인이 앞장서면 될 일 같다. 그러나 사회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 신앙인이 거의가 잠들어 있어서일지 모른다. 반의 반 만이라도 깨어 살아간다면 변할 수 있을 텐데, 자기 안에 갇혀 함께 뜻을 모아 연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희망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데서 피어난다. 강생이 누추한 구유에서 일어나고, 십자가에서 부활이 시작되었듯이. 작고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찾던 3%의 소금과 열 명의 의인이 이미 움직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죄인이 받아야할 세례를 받으시러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시던 예수님의 실천을 되새기며, 너무나 사변적인 그리고 개인 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어서 빨리 뛰쳐나올 수 있기를 함께 청해보자.
"저도 3%의 소금 속에, 그리고 열 명의 의인 속에 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