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 해외원조 역사와 현황
‘받는 교회서 주는 교회로’
93년부터 해외원조 시작
신자 1인당 지원 250원
교회 위상따른 나눔 필요
한국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92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사회복지주일을 나라 밖의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고 돕는 날로 정하면서 이듬해인 93년부터 본격적인 해외원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0여년 동안 선진교회의 도움을 밑거름으로 성장해온 한국교회가 1975년 2월 「한국외방선교회」 설립으로 비롯된 정신적인 나눔과 함께 물질적 영역까지 아우르는 모든 면에서 온전히 나누는 교회의 위상을 갖춰나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03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사회복지주일」을 「해외원조주일」로 명칭을 바꾸어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한국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눈길을 돌린 신자들의 사랑의 여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새해와 더불어 새롭게 맞이하는 해외원조주일은 「가난한 라자로도 부자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인간 공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민족들의 발전 47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인류가 한가족이 되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 나가야 할 소명을 일깨워준다. 실제 전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12억명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가 채 안 되는 돈으로 목숨을 겨우 이어가고 있고, 매일 4만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으로 꿈도 키워보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런 비인간적인 현실 속에서 지난 5년간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이 150년간 전쟁 등의 다툼으로 죽은 사람보다 많은 상황이 교회의 나눔이 국경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필요성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교회의 나눔은 단순히 물질적인 재화의 재분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연대의식의 전 세계적인 공유를 의미한다. 이런 나눔을 통해 인류의 정신과 삶을 그리스도적인 그것으로 이어지도록 이끄는 게 신자들이 부여받는 십자가라 할 수 있다.
원조 현황
한국교회의 해외원조 창구인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에 접수되는 해외 긴급구호 요청은 매년 70건이 넘는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질적인 도움이 돌아가는 곳은 30건 내외에 불과한 실정이다.
해외원조는 매년 1월 마지막 주일에 이뤄지는 「해외원조주일」 2차헌금과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내 「세계기아민후원회」를 통해 연중 접수되는 성금을 통해 이뤄진다.
원조 첫해인 1993년 당시 기아에 허덕이던 소말리아에 미화 5만9250달러를 지원한 것을 비롯, 20여개 나라 39개 사업에 10억4400여만원을 지원한 것이 본격적인 나눔의 시발점이 됐다. 이어 한해동안 적게는 18개 사업(2001년)에서 많게는 54개의 사업(1994년)을 지원함으로써 지난 2003년까지 11년 동안 총 355개 사업에 115억4600여만원을 지원해오고 있다. 한해 평균 10억원 이상을 해외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내놓음으로써 나눔의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해 오고 있는 셈이다.
한국교회가 지원한 나라를 보면 초기에는 아프리카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져왔으나 이후 다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소말리아, 르완다, 수단,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38개국, 북한을 비롯하여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동티모르 등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의 21개 나라, 그리고 동유럽의 유고, 코소보와 중동의 아프가니스탄, 남미의 에콰도르 등 가난으로 고통 속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 다가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륙별로는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56.3%의 지원이 이뤄졌고 아프리카 35.2%, 중남미 2.39% 등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에 대한 원조가 주를 이뤄왔다
해외원조주일 2차헌금액은 1993년 6억750여만원에서 지난 2003년 8억7300여만원으로 꾸준하게 늘어왔지만 소득 수준, 신자수 등을 고려할 때 거의 답보 상태와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 다른 해외원조 단체들의 활동을 포함해도 한국교회의 연간 해외원조 규모는 30억원 선에 머물러 교회가 국내복지에 투여하고 있는 연간 3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예산과 비교할 때 1%에 못미치는 빈약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해 평균 10억원의 해외원조금을 한국교회 400여만 신자로 환산해보면, 1인당 약 250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교회는 올해를 기점으로 해외원조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고 있다. 원조요청국에 대한 단순분배 차원에 그치던 원조가 선진국형의 자체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이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전국위원회 정기총회에서 방글라데시를 올해 집중 지원지역으로 선정함으로써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교회는 원조에 있어 새로운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를 전기로 한국교회는 보편교회 속에서 위상을 새롭게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한국교회 해외원조 심장부 ‘한국 까리따스’
“전문성 확보에 전력”
『삑, 삐익, 삐이익…』
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 장충동 족발거리 뒤켠에 자리한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장봉훈 주교) 사무국.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한참동안이나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팩스가 지켜보는 이들의 애를 태운다.
잠시도 쉴새없이 움직이는 사회복지위원회 팩스로 날아드는 사연만 하루 수십통. 재난지역의 구호활동 현황에서부터 구호사업을 요청하는 국제 까리따스로부터 온 긴급 문서, 각종 사회복지 관련단체들간의 연락문서 등 이루 종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독일의 대표적인 원조기관인 「미제레올」처럼 해외원조를 전담하는 기구가 없는 한국교회에서 사회복지위원회는 대외적으로는 「한국 까리따스」로 불리며 한국신자들과 세계화의 그늘 속에 숨죽이고 있는 소외된 이들을 잇는 사랑의 징검다리를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국 까리따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75년 6월, 가난한 이들을 지원해온 미국 가톨릭구제회(CRS) 한국지부가 철수함으로써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지속적으로 사랑을 나눌 필요성에 따라 고 지학순 주교가 총재로 「인성회」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인성회는 설립 이후 77년부터 「가진 바를 사랑으로 나누자」는 대주제로 매년 사순절운동을 전개하며 신자들의 이웃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일을 펼쳐왔다. 특히 1970, 80년대에는 농민, 노동자, 빈민 등 가난한 이들에게 독일 미제레올, 네덜란드 세베모 등 외국 원조기구들의 원조금을 연결해주며 그리스도적 사랑의 저변화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사회복지위원회의 기본적인 활동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 40) 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몫에서조차 떼어 나누어주는(사목헌장 88항 참조) 것이 해외원조의 정신이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이상준(알렉산데르) 국제부장은 『한국교회의 해외원조는 규모 면에서 아직 시작단계 수준이고 전문성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전문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면서 잠재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해나갈 때 나눔의 세계화를 위한 전망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 까리따스」로 불리우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직원들이 함께 했다.
■ 가톨릭교회의 대표적 원조기구 ‘국제 까리따스’
“아픔 있는 곳엔 우리가 있다”
이라크 복구 현장, 이란 지진 현장 등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는 구호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는 이들은 누구일까. 보통 알려진 상식대로라면 국제적십자사라는 대답이 우월한 터이지만 국제 까리따스(CARITAS INTERNATIONALIS)를 아는 이들이라면 조금도 망설임없이 국제 까리따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세상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가운데서도 국제 까리따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문 듯하다.
지난해 12월 26일 이란 밤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 현장을 지켜본 이들 중에는 주민들의 가족 못지 않은 깊은 슬픔에 빠진 이들이 있었다. 바로 지진이 발생하자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국제 까리따스 긴급구호팀이 그들이다. 이들의 요청으로 참사가 난 사흘 뒤인 29일에는 스위스 까리따스를 비롯한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까리따스가 각각 5만 유로씩을 이란 천주교회 등을 통해 지원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에든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분쟁이 있는 곳, 이로 인한 아픔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국제까리따스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까리따스는 전 세계 162개 회원 기구(한국은 사회복지위원회)의 제반 활동을 총괄, 조정하는 기구로 민간단체로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해외원조 조정기구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실천과 사회정의 구현 등을 목표로 한 국제 까리따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50년 9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선구호 활동을 벌이던 각국 까리따스에 교황청이 연대활동을 권고하면서였다. 「국제 가톨릭자선협의회」라는 명칭으로 활동을 펼치다 57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면 까리따스는 이미 1897년 독일 프라이부르그에서 독일 까리따스가 설립되고 이것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면서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국제 까리따스는 현재 유엔에 가입한 거의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전 세계 201개 지역에서 원조, 인간발전, 개발사업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같은 활동에 연평균 미화 1억달러가 소요되고 있음은 국제 까리따스 활동의 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라크 복구 현장에서 긴급구호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는 국제 까리따스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