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내적 성숙 부족, 영적 빈곤의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 수도회들은 봉헌 생활 본연의 존재적 역할을 통하여 시대적 요청과 교회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기를 요구 받고 있다. 교회 쇄신의 주체인 동시에 스스로 내적 쇄신을 이루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2월 2일 제8회 봉헌생활의 날을 맞으며 본지는 남녀 수도회 관계자들과 함께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오상선 신부(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협의회장,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
김정자 수녀(결손가정 아동 보호시설 만남의 집 원장, 서울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
▶사회=박문수 박사(가톨릭대 인간학 연구소 전임)
▶일시=1월 24일 오후 3시
▶장소=작은형제회 한국 관구 회의실
▲ 박문수 박사
▲ 오상선 신부
▲ 김정자 수녀
사회=1997년 봉헌 생활의 날이 제정된 후 올해로 8회를 맞고 있습니다. 이날은 봉헌생활이 교회 안에서 갖는 중요성을 모든 교회 구성원들에게 확인시키고 특히 봉헌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역할을 새롭게 하는데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도자들에게 이 봉헌생활의 날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오상선 신부=예수님께서 성전에 자신을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2월 2일 주님봉헌축일은 전통적으로 수도자들에게도 깊은 의미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각 수도회들은 이날을 기해 서원을 갱신하고 다시 한번 자신들을 봉헌하는 날로 삼아왔습니다. 이처럼 본래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봉헌 생활의 날이 갖는 의미는 수도자들이 주기적으로 봉헌의 삶을 되돌아보고, 교회와 세상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새로이 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따르려’ 다짐
김정자 수녀= 수도서원은 일생을 통해 철저히 그리스도를,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따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봉헌생활의 날은 그러한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다짐과 본연의 자세를 새롭게 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교회가 특별히 이날을 기해 수도자들에게 부여하는 특별한 의미와 가치는 어떤 것입니까.
김정자 수녀= 수도생활은 증거의 생활이고 예언자적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적 권고를 따라 삶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생의 전부가 될 때 참된 가치와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선택적 사랑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생활, 그리스도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상선 신부=교회안의 역사성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사셨던 모습을 본받기 위한 노력들이 박해 시대에는 순교 영성으로 드러났다면 종교자유 이후에는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고 주님만을 섬기는 수도 생활이나 동정의 영성 등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수도생활이 제2의 순교영성으로 여겨져 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따르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볼 때 수도생활은 초기 교회때부터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방법으로 인정받아 왔다는 역사성과 함께 신학적 이해면에서 교계적 구성에 관계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내적 생명과 성화에 참여하는 역할로 간주돼 왔다는 것이 가치를 인정받는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내 영적 생명에 활력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죠.
사회=한국교회의 영적 성숙 문제는 제 삼천년기 한국교회가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대두한지 오래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과제의 일차적인 해결 주체가 수도회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현 단계 한국교회가 직면한 영적 정신적인 문제들이 수도회에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한국 수도회들이 최우선적으로 노력하고 개선해야할 과제들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상선 신부=한국교회는 아시다시피 지난 50년간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성장은 내적 성숙을 동반하지 못하였기에 전체 신자의 ⅔가 냉담 혹은 준냉담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나머지 ⅓도 심각한 영적 빈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인은 한국사회의 독특한 전개과정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내부에서 원인을 찾자면 우리 교회가 신자들의 영적 성숙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수도회도 양적으로 팽창하는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본연의 역할보다는 사목에 치중하게 되었고 말입니다. 이 때문에 수도자들은 수도생활의 여러 영역 가운데 하나일 뿐인 사도적 활동을 주로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안의 자원봉사자나 교회단체의 직원으로 비춰지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교구도 성장하였고, 신자들도 놀라운 활력을 보이고 있기에 현재의 위기상황이 수도회와 수도자들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시대의 징표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수도회는 이러한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 다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내적 쇄신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김정자 수녀=종교가 무가치한 것으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최근의 세태는 교회와 수도회가 영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수도회들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풍요로움과 세속적 시류에 편승한데서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태에는 수도회들이 본연의 역할인 소비사회의 풍요로움을 거부하는 삶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창설 카리스마로 회귀할때
오상선 신부=수도자들의 영성 내면화와 신자들을 위한 영적 봉사가 수도회들이 해나가야 할 첫 번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수도회들이 사도적 활동 중심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수도생활을 존재적 역할 중심으로 옮겨 가면서 기울어진 수도생활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변화된 한국교회의 다양한 영적 욕구와 사목적 요구에 비추어 본래의 창설 카리스마로 돌아가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가장 손쉬운 예로 수도자들의 역할이 사목의 협력자와 사도직 일꾼이라는 개념에서 영신상담자 내지는 영적지도자로서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인구 성장둔화와 세속주의 물질주의 영향 등으로 종교성(신앙심)이 약화돼 있고 종교가 사회와 개인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낮아지는 상황이며 수도 성소도 감소 및 정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의 이러한 추세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오상선 신부=성소 감소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세속화 물질문명화 되어가는 사회 안에서 개인의 가치가 높아지고 영적 가치들이 상대화 되고 있다는 외부적 요인과 수도생활이 더 이상 매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내부적 요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외부적 요인을 해결하려면 현대 젊은이들의 삶과 문화에 수도회들이 더욱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는 과감히 본래의 카리스마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도전 의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던 시기에 각 수도회들이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고유 카리스마들을 구현하지 못했던 상황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데 모두가 본연의 삶을 실천한다면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입니다.
김정자 수녀=그간 건물을 짓고 제도를 갖추려 보낸 시간이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수도자들이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투신하는 것이 어려웠고 살아가는 방식도 수도생활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기존에 소유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예루살렘 공동체처럼 작으면서도 신자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살아있게 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수도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성소의 증감을 고민하기 보다 「우리가 과연 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며 복음을 사느냐」「복음대로 살려고 노력하는가」하는 것을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그러한 모습을 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봅니다.
‘영적 양성’ 우선적 관심
오상선 신부=수도회 역할과 이미지도 바뀌어야 합니다. 「기도의 전문가」「영적 상담자」로서 수도자들이 신자들의 내면적 갈등을 동반하며 해결해 줄 수 있는 역할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모임을 주관하는 역할 또 상담가 혹은 영신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어야 합니다. 그간 수도자들은 「현장」에서 뛰는 데만 급급하여 이런 준비가 소홀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사도직 교육뿐만 아니라 수도자 본연의 특성에 어울리는 기도와 영적 전문가로 양성될 수 있도록 영적 양성에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회=이제는 한국교회의 질적 성숙기에 걸맞는 형태로 수도자들의 역할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본당의 경우 기존 역할에서 벗어나 신자들의 내면적인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 역할의 조정은 본당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쇄신과 활력에 관계되는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오상선 신부=그러한 면에서 남녀수도회들간 영적 협력 필요성도 더욱 요청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도자들 스스로도 다른 사도직에 앞서 영적 봉사에 맞갖도록 노력하고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 입니다. 교구나 신자분들도 수도자들의 이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는 교회」로 전환해야 합니다. 나누는 교회로 변화할 때 성소는 더욱 증가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해왔던 기존 영역들은 축소될 것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도자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어서 빨리 주는 교회로 전환하여 이러한 시대적 요청들에 부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회와 주교회의가 공동협력하는 선교센터 건립 등을 한 방법으로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사회=봉헌생활의 날을 맞아 한국의 수도자들이나 교회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십시오.
김정자 수녀=수도자에 대한 본당과 교구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계속해서 수도자의 소양을 닦아나갈 수 있는 교육과 피정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도회도 여건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본당?교구에서도 이런 기회를 수도자들이 자주 갖도록 배려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수도자들 안에서 수도자 본연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현 시대의 절박한 요청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오상선 신부=대다수 신자들의 신앙생활 뿌리는 아마도 많은 부분 수도자들과 연결돼 있을 것입니다. 수녀님들이 있었기에 교리를 배울 수 있었고 신앙 영적 생활의 성장을 얻을 수 있었고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성소의 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봉헌생활의 날을 맞아 내 주변의 수도자들을 기억해보고 정말 그들이 충실히 살아갈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