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장. 회색의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한 눈동자가 빛난다. 그 눈빛은 반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뒤이어 일생을 통해 겪어내는 고통, 갈등, 의심, 반목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사랑.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헛 사랑에서부터 서로의 어깨에 기댄 사랑, 아버지의 내리사랑 그리고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는 자비의 여운이 47장 화폭에 이어진다.
화가 김옥순 수녀(막달레나.성바오로딸)는 최근 사순기간 동안의 성서말씀을 표현한 묵상성화 연작을 발표했다.
총 47점으로 구성된 작품은 사순기간 동안 매일 한 컷씩 묵상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 재의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기간 40일과 6번의 주일, 부활대축일의 묵상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특정 성서말씀을 성화로 선보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사순기간 매일의 성서말씀을 형상화한 연작은 드문 경우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작품 전체는 회색의 모노톤으로 현란하고 화려한 색채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감성을 차분한 묵상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된 입체 형상과 다양한 표정 연출이 눈에 띤다. 하느님 편에 모여든 모습을 표현한 수많은 사람들의 발,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편협함을 구체화한 돋보기 속의 사람 모습 등 독특한 형상들을 통해 작가만의 뛰어난 상상력과 묵상의 깊이도 엿볼 수 있다.
젤미디움 바탕을 칼과 나무 사포 등 갖은 재료로 표현, 아크릴과 파스텔로 색상을 표현해 입체감도 독특하다.
김수녀는 『사순의 여정은 예수께서 목숨바쳐 이뤄놓은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현재의 자신과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의 삶으로 방향을 바꾸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성화 연작은 그림과 관련된 묵상글과 함께 책으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87년부터 성서관련 성화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김수녀는 현재 어린이용 그림성서 작품에도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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