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한국에서 살고 싶고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고 싶다』며 한국에 대한 사랑을 늘 드러내던 박기홍 몬시뇰이 1월 4일 오전 3시경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3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10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오스트리아 그랏즈 교구 성 라데군도(St. Radegund) 성당에서 봉헌됐다.
48년간의 사제생활 중 25년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교회의 사회복지와 노동사목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고(故) 박기홍 몬시뇰(Msgr. Josef Platzer). 영남노동교육원과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을 비롯 마산가톨릭여성회관, 창원가톨릭사회교육회관(현 성산종합사회복지관) 등을 건립, 근로자 교육과 복지에 힘써온 박몬시뇰은 이같은 공로로 91년 대구사회복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박몬시뇰은 마산교구 주교좌 양덕동성당을 건립해 초대 주임을 역임했으며, 마산교구와 마산시가 설립한 200여세대 서민주택 건설에도 한 몫했다.
한편 마산교구는 1월 8일 오후 7시30분 양덕동성당에서 교구장 안명옥 주교 주례, 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합동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마산교구-그랏즈 교구 자매교구 위원회 (위원장=조재영 신부(진해 중앙동본당 주임))는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우주적이고, 세계적이며, 보편적인 교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신 박몬시뇰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투병중이면서도 담당 의사 몰래 우리나라를 몇 번이나 다녀갈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조신부는 또 『박몬시뇰은 큰 믿음과 큰 희망, 큰 사랑의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고 『우리의 눈물과 슬픔, 아픔을 기도로 묶어 고인을 위해 봉헌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1932년 오스트리아 마가렛에서 태어나 56년 사제품을 받은 박몬시뇰은 1970년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됐다. 84년 10월 몬시뇰에 임명된 박몬시뇰은 96년 6월 지병 치료차 오스트리아로 귀국했다.
귀국하며 가진 가톨릭신문과의 기자회견에서 박몬시뇰은 『제2의 한국인으로서 고향인 그랏즈 교구에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옷에 밴 된장 냄새를 잊지 못해 다소 향수에 젖을 것』이라는 말로 이별의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